되돌아오는 편지는 서늘한 절망을 내리꽂는다.

마음을 얹어 보낸 사연들은 망연히 스러지고 받는 이 없음을 알리는 붉은 도장은 보낸 이의 가슴속에 선명한 화인을 찍힌다.

김기덕 감독의 여섯번째 영화 "수취인 불명"(제작 LJ필름)은 감독의 말을 빌자면 "시대로부터 수신이 거부된 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갈곳을 잃고 떠도는 "수취인 불명"의 편지처럼 사회로부터 거부당한 인생들은 존재가치를 잃은채 나뒹굴고 짓밟히다 끝내 절망의 나락으로 버려진다.

무대는 70년대 미군기지 인근의 한 시골마을.

흑인 혼혈아 창국(양동근),나약한 소년 지흠(김영민),어려서 눈을 다쳐 한쪽눈이 흉한 백태로 뒤덮힌 여고생 은옥(반민정)이 중심이다.

창국의 엄마(방은진)는 양공주노릇을 하다 낳은 혼혈 아들과 함께 마을 어귀에 버려진 버스를 집삼아 살아간다.

여자는 미국으로 떠난 남편에게 17년째 "수취인 불명"으로 되돌아오는 편지를 쓴다.

검은 피부의 창국은 마을사람들에게 철저히 배척당하지만 어떻게든 세상에 소속되고자 발버둥친다.

동네 불량배들의 "밥"인 지흠은 은옥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만 은옥은 눈을 고치려는 욕망에 미군에게 몸을 내주고 만다.

하지만 이들이 애써 내미는 희망의 더듬이는 여지없이 뭉개지고 잘려나간다.

창국 엄마가 기다리는 답장은 결코 오지 않고,"튀기"는 어디까지나 "튀기"일 뿐이다.

두눈으로 본 세상역시 비관적이고,처절하게 찢겨진 사랑은 고통스럽다.

미군은 미군대로 고독과 외로움에 치를 떤다.

극한 절망에 다다랐을때 가련한 인생들은 극한 폭력으로,파국으로 치달아 간다.

김기덕 감독은 충무로에서 "작가주의"로 분류되는 몇 안되는 감독중 하나다.

흔히 "잔혹"이나 "엽기"로 요약되는 그의 작품세계는 일관되게 인간에 내재된 폭력성을 집요하게 바라보며 극단적인 방식으로 표출해왔다.

전작 "섬"에서 잔혹하고 엽기적인 묘사로 관객을 기절시키기까지 했던 감독은 "수취인 불명"에서 조금은 누그러진 태도로 관객에게 손을 내민다.

개를 몽둥이로 때려잡고,어머니의 젖가슴을 칼로 도려내며,아들의 시체를 거둬다 씹어먹기까지 가학적이고 잔인한 방식으로 극단적 비극을 드러내긴 하지만 작품속엔 그래도 서글픈 시대를 향한 연민이 깔려있다.

처절한 비극과 절망으로 얽혀있는 인간군상은 한국 현대사가 낳은 비극적 표상이며 70년대,80년대,90년대 한국 사회를 하나의 공간에 몽타쥬 형식으로 풀어넣고 싶었다는 게 감독의 설명.

이미지나 상징이 평면적이거나 여전히 거칠고 세련되지 못하다는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김감독은 분명한 색깔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평가받을 만 하다.

하지만 영화를 지지할 수는 있으되 사랑하기 힘든 불편함은 여전하다.

6월2일 개봉.

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