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주요 식재료인 파스타를 둘러싸고 소비자와 기업의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완화하고 있지만 파스타 가격만 홀로 고공행진 중이라서다. 이탈리아에선 소비자단체들이 반발하고 나섰고, 프랑스는 정부가 제재를 가한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2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탈리아 소비자 단체 코다콘스는 규제 당국에 가격 담합 가능성을 조사할 것을 요구하는 동시에 소비자들에게 파스타 불매운동을 촉구하고 나섰다. 일종의 '파스타 파업'을 촉구하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이탈리아 소비자들이 불만을 표출한 이유는 파스타 가격 때문이다. 최근 몇 달간 물가상승률이 완화되고 있지만 유럽 내 파스타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이탈리아의 파스타 1kg당 가격은 지난 3월 전년 대비 17.5% 올랐고, 4월과 5월에도 각각 15.7%, 14% 상승했다.이탈리아에선 파스타가 생활필수품으로 여겨진다. 우리나라로 치면 쌀밥에 해당하는 셈이다. 국제파스타협회(IPO)에 따르면 이탈리아인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파스타를 소비하며, 1인당 연평균 23kg을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파스타 가격 때문에 생활비도 치솟고 있다. 지난해 이탈리아 4인 가족의 식료품비는 연평균 7690유로(약 1066만원)에 달했다. 전년 대비 12% 가까이 늘어났다. 여론조사기관 SWG에 따르면 이탈리아 국민의 3분의 1이 식비 지출을 줄였다고 답했다.파스타 가격은 영국과 독일, 프랑스 등에서도 고공 행진하고 있다. 영국과 유럽연합(EU) 데이터에 따르면 4월 파스타 가격 상승률은 영국에서 27.6%, 독일에서 21.8%, 프랑스에서 21.4%를 기록했다.프랑스 정부는 주요 식품업체들에 가격을 인하하지 않으면 재정적 제재를 가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유럽연합(EU)에서 식품 인플레이션이 가장 높은 헝가리와 크로아티아와 같은 국가는 식용유, 일부 돼지고기, 밀가루, 우유와 같은 품목에 대해 가격 통제를 의무화했다.앞서 이탈리아 정부는 파스타값 급등에 소비자들의 요구가 높아지자 긴급회의를 소집한 바 있다. 하지만 자연 조정될 것으로 판단하고 개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닐 쉬어링은 "가격 통제는 새로운 공급을 저해함으로써 식품 인플레이션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반면 소비자 단체들은 파스타 제조업체가 지나치게 많은 이익을 추구한다고 비난했다. 파스타 주원료인 캐나다산 듀럼 밀 가격이 2021년 하락해왔을 때도 파스타값 상승세는 지속돼왔다는 주장이다. 듀럼밀가격은 최근 소폭 상승했지만, 고점 대비 40% 이상 내린 상태다.이탈리아의 바릴라, 드 세코, 라몰리사나와 프랑스 판자니 등 파스타 제조업체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비용 상승을 이유로 파스타 가격이 적정하다는 입장이다. 파스타 업체에 따르면 과거 비싼 값에 구매한 밀이 소진되는 데 시간이 장기간 소요된다. 현재 가격은 이 구매가격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이탈리아에서 4위 파스타 제조업체인 라 몰리사나의 최고경영자(CEO)인 주세페 페로는 "회사들이 최고 가격으로 산 밀 재고를 여전히 소진하고 있기 때문에 파스타 가격이 여전히 높다"며 "서너 달 안에 (소진이) 끝나면, 가격은 내려갈 것"이라고 말했다.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영국의 5월 근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21일 영국 통계청(ONS)에 따르면 에너지와 식품 등 변동성이 큰 항목을 제외한 5월 근원 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7.1%로 집계됐다. 4월(6.8%)보다 상승했을 뿐만 아니라 1992년 3월 후 최고치다.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8.7%를 기록했다. 4월의 연간 상승률과 같았지만, 전문가 예상치(8.4%)보다는 높았다. 영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개월 연속으로 예상보다 높게 나오고 있다. 영국 통계청은 “휘발유 가격 하락에도 불구하고 항공료, 여행비, 콘서트 입장료, 컴퓨터 게임 가격 등이 물가 상승률을 높였다”고 했다.식품 및 비주류 음료 가격 상승률은 18.3%로 전월(19.0%)보다 내렸지만, 여전히 매우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그랜트 피츠너 통계청 수석이코노미스트는 BBC 인터뷰에서 “임금 상승이 물가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야엘 셀핀 KPMG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근원 물가 상승률을 보면 기업들이 임금 상승에 따른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영국의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프랑스(6.0%), 독일(6.3%), 유럽연합(EU·7.1%), 미국(2.7%) 등 다른 주요국보다 높다. 영국을 제외한 이들 국가는 5월 물가 상승률이 소폭 하락했다. 물가 상승률이 쉽사리 잡히지 않는 만큼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도 긴축(금리 인상)을 계속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금융시장에서는 BOE가 22일 기준금리를 연 4.5%에서 연 4.75%로 올리며 13회 연속 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날 물가 상승률이 발표되자 0.5%포인트 인상 기대가 커지는 동시에 기준금리가 내년 초 연 6%까지 오를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통계청이 이날 별도로 발표한 공공 순채무는 5월 말 기준 2조5670억파운드(약 4225조원)로, 1961년 후 처음으로 국내총생산(GDP)을 초과했다.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서울 강남의 한 고등학교 기간제 교사인 A씨는 지난달 서울 대치동의 대형 학원에 모의고사용 ‘킬러 문항’ 3개를 약 100만원에 팔았다. 지인의 권유로 지난해 초부터 대형 학원에 문제를 판매하기 시작한 A씨는 아예 부업으로 삼고 매달 많게는 10개씩 문제를 팔고 있다. 월급이 300만원 안팎인 그는 “학교에서 받는 돈보다 킬러 문항을 판매해 벌어들이는 돈이 더 많다”고 말했다.‘사교육 카르텔’의 핵심으로 꼽히는 킬러 문항을 둘러싼 먹이사슬의 속내가 속속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대형 학원에 킬러 문항을 만들어 파는 일을 부업으로 삼는 교사까지 나올 정도다. A씨는 자신처럼 킬러 문항을 판매하는 교사가 상당수 있다고 말했다.21일 업계에 따르면 국어 과목 킬러 문항은 25만원, 수학 과목은 50만원 선에서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출제자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섭외돼 대학수학능력시험이나 전국연합학력평가 문제를 출제한 경험이 있으면 ‘웃돈’이 붙는다.일선 교사들은 학생에게 가르칠 킬러 문항을 만드는 데 전력을 다하는 동료가 적잖다고 입을 모은다. 킬러 문항이 학생들의 대입 당락을 가르다 보니 수업 진도에만 신경 쓸 수 없다는 것이다.교사가 내신 시험문제 출제를 앞두고 다른 과목 교사를 찾아가는 풍경도 펼쳐진다. 국어 과목 교사가 대표적이다. 수능 국어 시험은 대개 비문학 영역에서 법·경제를 다루는 사회과학 지문이나 과학기술 지문이 포함된 문제가 킬러 문항으로 꼽힌다. 교사 본인조차 이해하지 못할 전문적인 내용이 많아 출제에 앞서 사회나 과학 과목 교사를 찾아가 설명을 구하는 것이다. 서울의 한 공립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5년차 교사 한모씨(33)는 “한 달에 걸쳐 대학 전공 서적을 공부해 만든 문제를 학생들에겐 5분 안에 풀라고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학생들도 수험 준비 시간 대부분을 킬러 문항을 푸는 데 할애하고 있다. 올해 수능을 앞둔 수험생 박지원 군(19)은 “학원에선 킬러 문항을 잡기 위해 2000년대 초반 경찰대 입학 문제부터 PSAT(공직적격성 평가 시험), LEET(로스쿨 입학시험)에 나온 문제를 푸는 일도 있다”고 했다.일선 교사들 사이에선 결국 수업 시간이 ‘킬러 문항 풀이 시간’으로 전락했다는 자조적 반응까지 나온다. 학생들이 학교 수업은 제쳐두고 학원에서 나눠준 초고난도 문제집을 푸는 데 집중하고 있는 게 현장의 모습이다.한편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KBS 뉴스9에 출연해 “킬러 문항이 있어야 수능 변별력이 있다는 것은 사교육계 입장을 대변하는 궤변에 불과하다”며 “오는 26일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발표할 때 역대 킬러 문항 사례를 소상하게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