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의 한 아파트 외벽 곳곳에 에어컨 실외기가 설치돼 있다. 각 가정이 여름철 냉방을 위해 에어컨 온도를 1도 내리면 전국적으로 전기요금 부담이 총 2530억원(100일 기준) 늘어난다.   최혁 기자
서울 용산의 한 아파트 외벽 곳곳에 에어컨 실외기가 설치돼 있다. 각 가정이 여름철 냉방을 위해 에어컨 온도를 1도 내리면 전국적으로 전기요금 부담이 총 2530억원(100일 기준) 늘어난다. 최혁 기자
경기 고양시에 사는 40대 직장인 A씨는 코로나19 때 재택근무를 하면서 집에서 불필요하게 새는 전기가 많다는 걸 절감했다. 보는 사람이 없는데도 TV를 틀어놓거나, 안 쓰는 조명을 켜두거나, 필요 없이 플러그를 꽂아놓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A씨는 이후 가족과 함께 ‘전기 절약 모드’에 들어갔다. 구체적으로 △안 쓰는 전자제품 플러그 뽑기 △불필요한 조명 끄기 △청소기·헤어드라이어 한 단계 낮게 사용 △식기세척기·세탁기는 가득 찰 때 돌리기 △안 보는 TV 끄기 등 다섯 가지다.

이후 A씨 가족의 한 달 전기사용량은 이전보다 월 30㎾h가량 줄었다. 하루 1㎾h꼴이다. ㎾h당 가정용 전기요금 260원(부가세 포함)을 적용하면 월 7790원, 1년에 9만3500원을 아낀 셈이다. 전국 2371만 가구가 A씨 가족처럼 전기를 절약하면 1년에 2조2160억원을 절약할 수 있다.

플러그 통해 연 7000억원 샌다

에어컨 1도 낮추고, 플러그 24시간 꽂아두고…年 1조 허공에
12일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에어컨 사용이 늘어나는 여름철에는 △에어컨 설정온도 26도 유지 △안 쓰는 조명 끄기 △안 쓰는 전자제품 플러그 뽑기 세 가지만 실천해도 A씨 가정보다 많은 하루 1.09㎾h의 전기 소비를 줄일 수 있다. 에너지공단이 산출한 세 가지 방법의 전력 절감 효과는 각각 0.41㎾h, 0.36㎾h, 0.32㎾h다.

뒤집어 말하면 의식적으로 전기를 아껴쓰지 않으면 가정에서 매일 이만큼씩 전기가 줄줄 새는 것이다. 얼핏 보기엔 작은 것 같지만 전국적으로 따져보면 만만찮다.

우선 에어컨은 설정 온도를 1도 낮출 때마다 전국 가정에서 여름철에 추가로 부담하는 돈이 총 2530억원씩 늘어난다. 여름철 냉방 기간 100일, 에어컨 1도 낮추는 데 소요되는 하루 추가 전력(0.41㎾h), 전국 가구수 2371만 가구를 적용한 결과다. 국내 에어컨 보급률은 2019년 기준 가구당 0.97대다. 한 집에 한 대꼴이다.

24시간 꽂혀 있는 플러그도 마찬가지다. 에너지공단에 따르면 그냥 꽂아 놓은 플러그로 인해 발생하는 가구당 대기전력은 연간 115㎾h다. 전국 가정에서 1년에 총 7100억원이 불필요하게 새고 있는 것이다. 미사용 플러그가 ‘전기 거머리’ ‘전기 뱀파이어’로 불리는 이유다.

밥솥과 비데도 전기 사용이 많은 가전제품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조사를 보면 가구 내 전력 사용량이 가장 많은 가전제품은 전기밥솥이었다. 전체의 29%를 차지했다. 이어 냉장고·김치냉장고(25.5%), 에어컨(21.2%) 순이다.

에너지공단 관계자는 “가족이 많고 매 끼니 밥을 지어 먹는 경우 밥솥 전력 사용이 의외로 많다”며 “불필요한 경우 보온 모드 사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전기를 아낄 수 있다”고 말했다. 비데는 사용하지 않을 때 온열 기능을 꺼놓는 것도 전기 사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형광등, LED보다 전기 사용 많아

가정에서 흔히 쓰는 형광등도 LED 조명보다 전기 소모가 많다. 형광등을 쓰는 집은 LED 조명을 쓰는 집보다 월평균 16.2㎾h의 전기를 더 쓴다. 전기요금으로 따지면 월 4200원이 더 든다. 최근 형광등을 LED 조명으로 바꾸는 가정이 많은데, 실제 에너지 절약과 전기요금 줄이기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가정에서 에너지 절약을 유도하려면 결국 현재 원가 이하인 전기요금을 올려 ‘가격 신호’를 복원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금은 전기를 많이 쓸 때와 적게 쓸 때의 차이가 크지 않아 가정에서 에너지 절약에 둔감하기 쉬운 상황이라는 이유에서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