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이어 전기자동차 연비 규제, 탄소배출 규제까지 강화하기로 했다. 미국 내 완성차 제조사의 전기차 판매 비중을 대폭 늘려 글로벌 전기차산업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서다. 현대자동차 등 완성차 기업은 당초 계획보다 전기차 전환 속도를 더욱 높여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 환경보호청(EPA)은 12일(현지시간) 자동차 탄소배출 기준을 강화해 2032년 신차의 67%를 전기차로 대체하는 내용의 탄소배출 규제안을 발표했다.

규제안은 전기차 판매 규모와 비중을 명시하는 대신 2027~2032년 총판매 차량의 탄소배출 한도를 엄격히 제한해 2032년 전체 신차의 3분의 2를 전기차로 채우는 것을 강제하는 내용이다. 지난해 미국에서 판매된 신차 중 전기차가 5.8%에 불과한 것과 비교하면 급진적이다.

앞서 11일에는 미 에너지부가 새 ‘석유환산연비계산법(PEF)’을 발표했다. 미국은 고효율·친환경 자동차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매년 기업이 생산하는 자동차의 평균 연비를 규제하는 기업평균연비규제(CAFE)를 운용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아예 전기차 연비 계산 방법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제조사는 판매한 차종별 평균 연비가 CAFE 기준치보다 낮으면 벌금을 내야 한다. 에너지부는 새 연비 기준을 2027년 생산 모델부터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에너지부는 전기차 전비(電費)를 내연기관 연비로 전환할 때 쓰는 석유등가계수를 기존의 3분의 1 수준으로 낮출 계획이다. 이 경우 현대차 코나EV의 환산 연비는 기존 L당 181.3㎞에서 51.19㎞로 떨어진다. 코나 가솔린 모델의 에너지부 기준 연비는 L당 18.37㎞로, 2026년 CAFE 기준치인 L당 26㎞에 미치지 못한다. 벌금을 피하기 위해서는 전기차 판매 비중을 확대할 수밖에 없다.

미 재무부는 오는 18일 북미산 전기차에만 7500달러의 세액공제를 제공하는 IRA에 따른 혜택 대상 차종을 발표한다. 현대차 GV70 전기차 등 상당수 차종이 배터리 광물·부품 요건을 맞추지 못해 탈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정부가 급진적인 정책을 펼치는 것은 글로벌 전기차산업을 장악하기 위해서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현대차는 당장 미국 전기차 전환 전략을 전면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이다. 현대차는 2030년 미국 시장에서 전체 자동차 판매의 58%를 전기차로 채울 계획이었다. 뉴욕타임스(NYT)는 “자동차업체에 심각한 도전”이라고 보도했다.

김인엽/김일규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