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희 서원대 교수
김병희 서원대 교수
똑같은 식재료를 가지고 음식을 만들었는데 왜 맛에 차이가 날까? 흔히들 손맛이라고 하는 요리 솜씨가 다르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의 강국이라는 프랑스에서는 철학자 헤겔이 미학 연구에서 제시했던 건축, 조각, 회화, 음악, 문학이라는 예술의 5가지 기본 범주에 추가하는 방식으로 예술을 분류해왔다.

5가지 기본 예술에 더하여 여섯 번째는 공연 예술, 일곱 번째는 영화, 여덟 번째는 미디어 아트, 아홉 번째는 만화다. 그리고 최근에 열 번째 예술 장르에 요리가 선정됐다.

요리가 예술의 반열에 오른 데에는 솜씨의 차이가 맛의 차이를 결정한다는 사실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광고 크리에이티브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문제 해결 과제가 주어지고, 똑같은 광고 콘셉트가 주어지더라도, 누가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완성도에 있어서 현격한 수준 차이가 난다. 따라서 광고 창의성의 수준을 결정하는 창작자의 솜씨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에서 집행된 알랜2의 광고 ‘콜로세움’ 편(2011)을 보자. 알랜2(Alen2)는 이탈리아의 나폴리 지역에서 생산되는 가죽제품 전문 브랜드이다.

손으로 한 땀 한 땀 만드는 수제품으로 정평이 나있다. 광고 창작자들은 진한 밤색의 허리띠에 분위기를 맞추려고 광고의 배경을 옅은 밤색으로 처리했다.

‘로마’라는 글씨를 붙인 나무 받침대 위에 허리띠 하나가 놓여있다. 그런데 아무렇게나 놓여있지 않고 둘둘 말려서 위쪽으로 올라가는 모양새로 자리를 잡았다. 유리에 비치는 실루엣까지 표현했다.

얼핏 봐도 고급 허리띠 같다. 가죽이 요란하게 빛나지도 않고, 담백하고 은은한 느낌을 준다. 그런데 둘둘 말아 올린 품새가 어디선가 본 듯한 모양이다.

아, 허리띠를 감아 만든 로마 시대의 콜로세움(Colosseum)이다. 허리띠에 구멍을 뚫어 콜로세움의 창문까지 표현해낸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수제 걸작(Handmade Masterpiece). 이탈리아인이 오랫동안 애용해온 고급 벨트(Italian long lasting quality belts).”

카피를 읽으면서 허리띠를 다시 살펴보니, 장인의 솜씨가 한결 생생하게 느껴진다.
알랜2의 광고 ‘콜로세움’ 편 (2011)
알랜2의 광고 ‘콜로세움’ 편 (2011)
‘콜로세움’ 편에 이어서 시리즈로 집행된 ‘피사의 사탑’ 편(2011)에서도 알랜2 허리띠를 마치 인류의 문화유산처럼 표현했다.

광고 창작자들은 흰색 허리띠에 알맞게 광고의 배경을 옅은 회색으로 섬세하게 처리했다. ‘피사’라는 글씨를 붙인 돌 받침대 위에 허리띠를 배치하고, 이번에는 더 높게 둘둘 말아 올려 탑을 만들었다.

기울어진 모양새로 봐서 영락없는 피사의 사탑(Torre di Pisa)이다. “수제 걸작. 이탈리아인이 오랫동안 애용해온 고급 벨트.” 시리즈 광고의 흐름에 알맞게 카피를 똑같이 썼다.

유리에 비치는 탑의 실루엣에서도 빛에 반사된 제품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사진으로 포착한 실타래의 촘촘한 짜임새를 보면 허리띠를 만든 장인의 솜씨가 전해진다.

광고 창작 공부를 하루 이틀 해가지고서는, 허리띠를 계속 말아 올려 피사의 사탑을 형상화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내기 어렵다. 제품도 수제 고급품이지만 광고를 만든 솜씨도 가히 수준급이라 할만하다.

광고 창작자가 솜씨를 발휘해 허리띠를 인류의 문화유산처럼 빚어내니,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전통과 격조가 저절로 느껴진다.
알랜2의 광고 ‘피사의 사탑’ 편 (2011)
알랜2의 광고 ‘피사의 사탑’ 편 (2011)
두 광고에서 채굴한 경영의 스티커 메시지는 솜씨(Craftsmanship)다. 솜씨란 손과 머리를 놀려 어떤 일을 해내는 재주라고 할 수 있다.

처음부터 뛰어난 솜씨를 발휘하기는 어렵고, 오랫동안 정성을 쏟아야 비로소 조금씩 나타날 것이다.

기업 경영자나 정치인에게도 솜씨가 필요할 듯싶다. 하기야 연설 원고를 직접 쓰지 않고 누군가가 써주는 원고를 그대로 읽는 데만 익숙한 분들이라, 그분들에게는 솜씨가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써준 원고를 그대로 읽기보다 자기 스타일대로 바꾸려고 공들이는 것도 솜씨에 버금가지 않을까?

고 노무현 대통령은 비서관이 써준 원고를 그대로 읽는 경우란 거의 없었고, 항상 자기 스타일대로 원고를 바꾸는 솜씨를 발휘했다고 한다.

전설적인 광고인 윌리엄 번벅(William Bernbach: 1911-1982)은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메시지를 표현하는 창작솜씨(execution)를 특히 강조했던 셈이다. 핵심 메시지인 ‘무엇’을 결정하는 것은 표현의 기본 바탕은 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며, 무엇을 ‘어떻게’ 표현하느냐 하는 창작솜씨 자체가 결국 메시지의 설득력을 결정한다는 것. 번벅은 창작솜씨(실행)를 광고 창작에서 가장 중요한 금과옥조로 삼았다.

일본의 기업인들은 기업 경쟁력이나 브랜드의 성공 요인을 설명할 때 모노쓰쿠리(ものづくり)라는 말을 자주 쓴다.

장인정신으로 이루어지는 제조 과정을 뜻하는 말이다. 어떤 문제가 나타났을 때 제품 제작을 수차례 반복함으로써 만드는 솜씨를 터득하고 결국 최적의 제품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모노쓰쿠리로 설명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보면 기능은 기술로 이어지고, 기술은 장인정신으로 승화될 수밖에 없다.

솜씨에는 긍정적인 뜻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 주어진 일을 능란하게 처리하는 재주나 수완의 의미로도 쓰이고 있다.

위장 솜씨나 해결 솜씨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능력을 발휘하는 경우다. 이처럼 부정적인 뜻의 솜씨를 발휘하는 것은 멀리하고, 요리 솜씨, 글 솜씨, 말솜씨 같은 긍정적인 솜씨를 갖추려고 노력해야겠다.

경영자도, 정치인도, 우리 모두도. 절차탁마(切磋琢磨: 옥을 갈고 닦아 빛을 내듯 열심히 연마함) 하다보면, 솜씨의 대기만성(大器晩成)이 이루어질 그날이 언젠가는 오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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