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페이 상장이 금융당국의 갑작스러운 제동으로 사실상 10월로 미뤄지면서 카카오페이가 올 하반기 야심차게 준비해온 신사업들이 줄줄이 늦춰질 전망이다. 금융권에선 당국이 기업가치와 공모가 산정 과정에 지나치게 개입함으로써 민간 기업의 사업 부담만 늘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당국에서는 공모주 발행을 주관하는 증권사 등이 제대로 된 기업 실사보다 증시 시황에만 기대어 공모가를 부풀려온 관행이 없었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고 반박한다.

정정에 딱 하루 준 금융당국

카카오페이 상장연기 논란…"금감원 과도한 개입" vs "투자자 보호"
21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이 카카오페이에 보낸 증권신고서 정정요구 관련 안내문에는 기업가치 산정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며 재산정하라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 16일 오후 2시께 카카오페이가 제출한 증권신고서를 반려하면서 정정 요구를 공시했다.

문제는 금감원이 카카오페이가 증권신고서를 정정할 수 있는 시간을 ‘하루’만 줬다는 것이다. 카카오페이가 당초 계획대로 다음달 기업공개(IPO)를 진행하려면 1영업일 만인 19일까지 금감원에 정정신고서를 제출해야 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해외 투자자를 대상으로 하는 투자설명서와 증권신고서에 반영되는 회계결산 자료의 유효 시한을 135일로 두고 있다. 일명 ‘135일 룰’이다.

1분기 자료를 토대로 제출한 증권신고서의 유효 시한은 다음달 13일이다. 하지만 증권신고서는 제출한 뒤 15영업일이 지난 시점에 효력이 발생한다. 이후부터 진행될 수요예측, 공모가 확정 등에 필요한 기간을 고려할 때 일반 청약을 도저히 13일 전에 실시하기 어렵게 된 셈이다. 이제는 2분기 결산 자료까지 다시 넣어 증권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카카오페이는 해외 투자자가 많기 때문에 135일 룰을 따를 수밖에 없는 처지다.

결국 카카오페이가 정정한 증권신고서는 10월께나 제출될 전망이다. 카카오페이의 2분기 결산 자료는 다음달 중순께 나올 예정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135일 룰이 깨진 사례가 없기 때문에 금감원이 ‘IPO 대어’가 몰려 있는 다음달 이후로 카카오페이의 상장을 늦추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카카오페이 신사업, 모조리 연기

카카오페이는 IPO를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추진하려던 신사업을 모두 연기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하반기 모바일증권거래시스템(MTS) 출시를 앞둔 카카오페이증권, 새로 출범할 카카오 손해보험사에 대한 자금 지원이 당분간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카카오페이는 지난 2일 증권신고서를 제출하면서 MTS 개발을 추진 중인 카카오페이증권에 3000억원을 출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카카오페이 간편결제 인프라 확장과 후불교통 서비스 출시도 잇달아 늦춰질 전망이다. 수개월 차이로 사업의 성패가 엇갈리는 가운데 잇단 서비스 연기는 카카오페이의 성장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특히 해외 기관투자가 유치를 중점적으로 추진한 카카오페이 입장에서 이번 금감원의 조치가 투자자의 의사결정에 악재로 작용할 소지도 크다.

금감원 관계자는 “카카오페이가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게 됐다고 하는데 그만큼 중요한 이벤트였다면 기업가치 평가 근거를 엄밀히 검토했어야 한다”며 “최근 공모가 부풀리기로 투자자들이 손실을 보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 당국이 팔짱만 끼고 있을 수도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그럼에도 당국이 매끄럽지 못한 행정으로 기업 부담만 늘리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이 같은 금감원의 갑작스러운 제동은 대규모 자금이 오가는 기업의 자금 조달 계획에 커다란 불확실성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카카오페이나 주관사 측과 미리 조율하는 등 융통성 있는 대응이 아쉬운 대목”이라고 말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