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감독 지자체 이양 '포문' 연 경기도…자세 고쳐앉는 정부·경영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4차 대유행 우려와 함께 온 나라의 관심이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쏠려있던 지난달 30일, 노동계와 경영계 안팎의 시선을 끄는 한 광역지방자치단체의 브리핑이 있었다.

경기도는 이날 '경기도 산재 예방 성과 및 향후 추진 방향'이라는 주제로 온라인 브리핑을 열고 산재 예방을 위한 경기도의 계획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크게 다섯 가지로 △지방정부 노동분권 강화 △선제적 산재 예방 강화 △안전한 노동일터 조성 △촘촘한 산재예방 구현 △노동거버넌스 활성화 등이다. 경기도는 도 차원의 '산재 예방 협의체'를 구성해 상시 운영하기로 했다. 산재예방 지도 인력인 '노동안전지킴이'를 경기도 내 10개 시에서 31개 시·군 전역으로 확대하고, 전담인력도 기존 10명에서 100명 이상으로 늘리기로 했다. 앞서 경기도는 플랫폼 배달종사자 2000명에게 산재보험료의 90%를 지원하는 사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날 경기도가 내놓은 대책 중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지방정부 노동분권 강화'다. 경기도가 다섯 가지 대책 중 맨 앞에 배치한 항목이기도 하다. 경기도는 지역 내 현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지자체가 근로감독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산재 예방 효과도 클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동안 중앙정부가 행정력의 한계를 호소하며 근로감독관 증원을 추진해왔다는 점도 경기도의 '공략 포인트'다.

경기도는 그동안 중앙정부(고용노동부)가 관리하는 근로감독 권한을 지자체에 이양 또는 공유할 것을 주장해왔다. 통상 지금까지는 이재명 지사의 발언이나 SNS를 통해 지자체 근로감독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면 이날 브리핑을 통해 공식적인 논의를 요구했다는 게 정부와 경영계의 평가다. 경기도는 이날 발표와 별개로 예산 1억원을 들여 '지방정부 근로감독권한 공유 협력 모델' 개발 용역을 발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수의 변호사 등에게 고용부가 독점하고 있는 근로감독 권한을 분산시킬 방안과 논리를 찾아달라고 주문한 것이다.

정부와 경영계는 공식적인 대응은 하지 않았지만 대략 난감해하는 분위기다. 우선 정부는 그간 경기도의 요구에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위반 등을 이유로 근로감독 권한의 분산이 불가하다고 대응해왔음에도 경기도가 공식 브리핑을 통해 '포문'을 열자 자세를 고쳐앉는 모양새다. ILO협약 81호는 근로감독관의 소속과 관련해 '회원국의 행정관행에 반하지 아니하는 한 중앙기관의 감독 및 관리 하에 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근로감독이 통일된 기준에 의해 일관성 있게 수행되어야 한다는 이유라는 게 정부측 설명이다.

경영계에서는 비슷한 이유로, 이른바 '이재명표 근로감독'을 우려하고 있다. 경기도가 주장하는 근로감독의 효율성 논리는 차치하더라도 자치 기업현장에 대한 근로감독이 정치적으로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다. "경기도가 아닌 다른 지자체에서 근로감독권 이양 또는 공유를 주장했다면 반향이 크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한 경제단체 관계자의 설명이다.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이어 곧바로 전개될 대선 국면에서도 주요한 이슈가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영세 사업장의 열악한 근로환경,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취약 근로자에 집중되는 타격, 온라인에서 터져나오는 직장내 갑질 등 괴롭힘 등 '을'들의 표심을 자극할 이슈가 대선 국면에서 강력한 근로감독 필요성 논의를 불러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