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소재·부품·장비(소부장)를 넘어 제조업 전반의 자생력 강화에 ‘올인’하기로 했다. 제조업 전반의 가치사슬에 대한 전수조사를 해 국내 제조업 발전에 필수적이지만 해외 의존도가 높은 분야를 추려낸 뒤 대대적인 국산화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중국과의 수교로 한국 제조업의 해외 분업이 본격화된 1993년 이후 27년 만에 정부가 산업정책을 근본적으로 새로 짜는 작업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산업 지도’ 그리기 나선 정부

소·부·장처럼…'제조업 자생력 키우기' 올인
26일 정부 및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들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제조업 전반의 가치사슬에 대한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해외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지만 국내 생산 역량 강화를 위해 집중적으로 지원 및 육성해야 할 분야를 추려내기 위한 기초 작업이다.

제조업 전반의 가치사슬 조사는 일종의 ‘산업 지도’ 그리기다. 소재에서 시작해 완제품 제작에 이르기까지 생산 단계별로 국내 기업 현황과 해외 의존도, 제품 종류 및 매출 규모 등을 상세하게 조사한다. 이렇게 되면 각 산업의 가치사슬에서 국내 생산 기반이 취약한 분야가 한눈에 드러난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1990년대 이후 한국은 글로벌 분업 구조 안에서 성장해온 만큼 국내 가치사슬을 다시 강화하는 것은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이라며 “한정된 재정 투입으로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국내 가치사슬의 취약점을 세밀하게 조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업부는 산업연구원을 비롯한 관련 기관들과 지난 5월부터 이 작업에 나섰다. 코로나19 여파로 제조업 분야의 글로벌 가치사슬(GVC) 재구축 필요성이 부상하던 시점이다. 해외 생산 부품의 수급 문제로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이 생산 중단 사태를 맞으면서 자국 내 생산 역량 확보가 중요 과제로 부상했다. 산업부는 이때부터 기존 국제 분업 구조에 의존한 GVC를 개편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국내 생산 역량 강화와 주요 소재·부품의 공급처 다변화가 핵심이었다.

R&D부터 지방 산단까지 영향 미칠 듯

이번 조사는 지난해 7월 일본의 수출 제재 조치 이후 이뤄지고 있는 ‘소부장 국산화 정책’과도 일정 부분 연결된다. 수출액을 기준으로 한국 제조업의 71%가 소부장 관련 산업이다. 최근 정부는 당초 100개였던 소부장 육성 품목을 338개까지 확대하기로 했지만, 이번 조사 결과에 따라 지원 품목을 한층 더 확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소부장 이외 품목들로 지원 대상을 늘리기 위해 이번 조사 결과를 활용하겠다는 방침이다. 산업부 다른 관계자는 “비용 문제로 중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시제품 제작도 국산화 필요성이 높지만 소부장 육성 전략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전체적인 가치사슬이 그려지면 안정성이 중요한 분야를 선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번 조사 결과는 통상정책과 연구개발(R&D) 지원부터 지방 산업단지 구조조정에 이르기까지 산업정책 전반에 영향을 줄 전망이다. 정부가 힘을 실을 분야가 정해지면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지는 제품이나 산업군도 드러나면서 자연 도태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나서서 이런 작업을 하는 데 대한 근본적인 의문도 제기한다.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전수조사가 끝날 시점에 세계 산업의 판도와 주요 제품 가치사슬이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며 “개별 기업 수준에서 대응해야 할 분야에 정부가 뛰어들어 한 발 늦은 산업정책을 내놓으며 재정 낭비만 초래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노경목/구은서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