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방아쇠’를 당겼어요.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속도가 훨씬 더 빨라질 것입니다.”

초대 4차산업혁명위윈장을 지낸 장병규 크래프톤 이사회 의장(47)이 인터뷰 첫머리에 꺼낸 얘기다. 그는 코로나19의 함의를 ‘속도’라는 단어로 요약했다. 업무와 일상이 ‘언택트’(비대면)로 이뤄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가 우리 예상보다 빨리 왔다는 설명이다. 그는 “디지털 역량이 부족한 국가나 기업은 생존이 힘들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장병규 의장 "코로나19로 4차 산업혁명 더 빨라질 것"
“사회적인 합의가 부족하거나 이해관계가 복잡해 미뤄두고 있던 문제들 풀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도 했다.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드는 위기 상황을 생산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장 의장은 “규제에 막혀 10년째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던 원격의료와 관련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며 “노동이나 교육 같은 해묵은 과제들도 토론의 장에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인터뷰는 근로자의 날인 지난 1일 영상회의 플랫폼인 ‘줌’을 통해 이뤄졌다. 장 의장은 “코로나19의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자리라면 ‘언택트 ’가 제격”이며 비대면 인터뷰를 요청했다. 4차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난 후 국내 언론과 가진 첫 인터뷰기도 하다.

▷세상이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세상은 계속 변하고 있었어요. 변화의 양상이나 방향은 그대로에요. 달라진 것은 속도 뿐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언택트’ 기술만 봐도 그래요. 이전에 없던 기술이 아닙니다. 국민들이 언택트 기술을 좀 더 친숙하게 느낄 뿐이지요. 핵심은 ‘디지털의 심화’에요. 특히 인공지능(AI)의 보급이 한층 더 빨라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모범 방역국’으로 불리면서 얻은 것도 많아 보입니다.

“가끔 기업하는 분들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얘기를 하는데 자기 경멸적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외국인들 중 그런 생각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한국에 대한 첫 이미지는 ‘한강의 기적’입니다. 두번째가 ‘한류’죠. 여기에 코로나19 사태로 ‘모범 방역국’, ‘안전한 나라’ 이미지가 더해졌습니다. 국가 브랜드가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면 됐지 걸림돌이 되지는 않습니다.”

▷코로나19의 공포가 서서히 걷히고 있는 시점에서 기업들이 고민해야 할 화두가 있을까요.

“4년 전에 한 스타트업 행사에서 쿠팡이 온라인 유통시장에서 이마트를 꺾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저도 두 회사의 운명이 이렇게 빨리 엇갈릴 것으로는 안 봤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시기가 앞당겨졌습니다. 기업 세계에서 2등이 1등으로 올라서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1등이 큰 실책을 해야 2등에게 기회가 돌아가죠. 온라인 유통의 핵심은 머천다이징(상품기획)과 엔지니어링입니다. 상품기획이야 이마트가 지금도 몇 수 위일 것입니다. 결국 엔지니어링에서 차이가 벌어진 것이죠. 훌륭한 기술 인력이 누구인지를 파악하고, 그 사람을 조직으로 데려와 중책을 맡기는 과정들이 자연스럽게 이뤄져야하는데 잘 안 된 겁니다. 기업의 엔지니어링 역량은 최고기술책임자(CTO)의 위상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특정 기업을 거론할 때 누가 CTO인지 잘 안떠오르면 그 회사의 엔지니어링 전략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지금이라도 조직을 엔지니어 중심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

“전통기업들도 성공 사례가 있긴 합니다. 기아자동차는 K시리즈를 내놓으면서 다른 회사가 됐습니다. 폭스바겐 출신의 피터 슈라이어를 디자인 책임자로 영입한 게 변화의 시작이었죠. 그 사람을 데려올 때 조직의 저항이 만만찮았을 겁니다. 우여곡절 끝에 변화를 수용하게 됐고 그때부터 결집한 역량이 ‘제네시스의 기적’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디자이너 조직을 바꾸는 것은 그나마 쉬워요. 별동대 성격이 강하니까요. 엔지니어 조직은 쉽게 건드릴 수 없습니다. 이마트 부서장들 대부분이 상품기획 전문가들일텐데 이들을 한꺼번에 엔지니어로 교체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더구나 요즘엔 S급 엔지니어를 구하는 것도 힘들어요. 일좀 하는 친구들은 애플, 구글 등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먼저 데리고 갑니다.”
장병규 전 4차산업혁명위원장이 지난 1일 영상회의 플랫폼 ‘줌’을 통해 한국경제신문과 화상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허문찬기자 sweat@hankyung.com
장병규 전 4차산업혁명위원장이 지난 1일 영상회의 플랫폼 ‘줌’을 통해 한국경제신문과 화상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허문찬기자 sweat@hankyung.com
▷정부가 해야할 일들도 있을텐데요.

“제일 먼저 ‘노동 다양화’의 법제화를 고민해 달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4차산업혁명위원회에서도 여러 번 다뤘던 주제지만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어요. 상황이 다른 근로자들을 다른 잣대로 들여다봐야 한다는 게 노동 다양화의 핵심입니다. 근로자를 쉽게 해고할 수 있는 노동 유연화와는 맥락이 다르지요. 연봉 10억원 이상을 받는 화이트칼라 엘리트에게 주52시간제를 강요하거나 기존 노동법을 플랫폼 노동자에게 적용하는 우를 범하면 안됩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정보기술(IT)에 기반한 신산업들이 탄생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전통 제조업을 전제로 한 노동 프레임을 씌우면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없어요.”

▷고용 이외의 또다른 의제가 있을까요.

“고등교육 시스템을 수술할 때가 됐습니다. 한국의 대학 경쟁력은 10년째 제자리걸음이에요. 등록금이 동결된 게 10년째지요. ‘반값 등록금’이란 정치적 구호가 자리잡으면서 교육의 질이 뚝 떨어졌어요. 과거에도 그랬지만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엔 소수의 엘리트의 경쟁력이 국가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대학의 숫자를 줄이더라도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때입니다. ”

▷코로나19로 기업과 관련한 규제들을 풀어줄 명분이 생겼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기업인들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이에요. 정부가 규제를 풀어준다고 해도 좀처럼 안 믿어요. 정부의 규제 완화 약속을 믿고 사업을 벌였다가 뒷통수를 맞은 경우도 많았고요. 정부가 달라졌다는 점을 보여주려면 상징적인 사건들을 깔끔하게 해결해야해요. 그러면 기업인들도 정부를 믿고 과감한 투자에 나설 것입니다. 국토교통부라면 ‘타다’를 부활시킬 수 있습니다. 국토부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을 ‘타다 활성화법’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제2, 제3의 타다가 쏟아질 것이란 주장이었죠. 이런 주장을 국토부 홈페이지에 배너 광고를 게재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업계에선 이 법안을 ‘타다 금지법’이라고 부릅니다. 타다도 스스로 사업을 포기했고요. 국토부 주장대로라면 타다 이슈는 국토부가 시행령을 손질하는 것만으로도 해결이 가능합니다.”

▷국토부 공무원들이 자발적으로 타다를 되살리는 게 가능할까요.

국회의원 생활을 오래 하신 국토부 김현미 장관님이 ‘타다 활성화법’이라고 강하게 주장하신 만큼, 가능하지 않을까요. 현 정부 들어 타다 등 모빌리티 산업을 담당하는 국토부에서 차관을 맡다가 국회의원이 되신 분도 있으니 국토부와 장관님의 의지만 있다면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여건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새로 꾸려질 국회에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국회의원님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딱 한 문장입니다. ‘건강한 사람도 굶으면 죽는다.’ 모두가 아는 상식입니다. 그동안은 코로나19 사태로 국민들의 건강을 지키는 게 절대절명의 과제였습니다. 이제 모두의 노력으로 건강을 어느정도 되찾았습니다. 이제 굶지 않게 해 주셔야 합니다. 좌와 우 이념을 떠나서 경제 문제 해결에 힘을 모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송형석/이수빈 기자 click@hankyung.com

◈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은

대표적인 1세대 벤처창업가로 꼽힌다. 대구과학고등학교를 2년만에 조기졸업한 장 의장은 KAIST에서 전산학을 전공한 엔지니어 출신이다. 박사과정에 다니며 ‘네오위즈’를 창업했다. 검색 엔진 ‘첫눈’, 벤처캐피탈 ‘본엔젤스파트너스’, 게임회사 ‘크래프톤(옛 블루홀스튜디오)’ 등을 설립했다. 크래프톤은 게임 ‘테라’, ‘배틀그라운드’가 연이어 성공하면서 2018년 유니콘 대열에 올랐다. 장 의장은 2017년 9월부터 2020년 2월까자 문재인 정부의 4차산업혁명위원회 1·2기 위원장을 맡아 정부에 산업혁신방안을 제안했다. “대학 등록금을 자율화하고 주 52시간 근로제 적용을 완화해야한다”는 등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의견을 내면서 ‘미스터 쓴소리’라는 별명도 얻었다.

▶대구과학고, KAIST 전산학과 학사·석사·박사
▶1996년 네오위즈 창립
▶2005년 첫눈 창립
▶2007년 블루홀스튜디오,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 창립
▶2017~2019년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
▶2017~현재 크래프톤 이사회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