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밤 부산신항 입항한 2만4천TEU급 알헤시라스호
17시간 걸쳐 7천300t 급유…단일선박 7천t 이상 국내 처음
대형 급유선 없어 수송선까지 동원…"대형선 확보 지원 절실"
한번 넣는 기름이 200ℓ드럼통 3만6천여개 분량…세계 최대 컨선
28일 밤 부산에 입항, 첫 화물을 하역한 HMM(현대상선의 새 이름)의 2만4천TEU급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 알헤시라스호는 연료유 공급에서도 새로운 기록을 썼다.

국내 항만에 기항한 선박 중 처음으로 7천t이 넘는 연료유를 해상 공급받았기 때문이다.

29일 한국급유선선주협회와 HMM 등에 따르면 신항 4부두에 접안한 알헤시라스호에 연료유를 공급하는 작업이 이날 새벽 1시께부터 시작됐다.

17시간여에 걸쳐 총 7천300t(7천300만ℓ)을 공급한다고 급유를 맡은 GS칼텍스 대리점인 ㈜진성은 밝혔다.

이를 200ℓ들이 드럼통으로 환산하면 3만6천500개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이다.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철광석 운반선 등에 3천~4천t 정도 연료유를 공급한 적은 있었지만, 초대형 컨테이너선에 7천t 이상을 급유하기는 처음이다.

한번 넣는 기름이 200ℓ드럼통 3만6천여개 분량…세계 최대 컨선
HMM은 "7천300t은 알헤시라스호의 연료 탱크를 가득 채우는 수준으로 100일 동안 운항할 수 있는 양"이라고 말했다.

컨테이너선이 아시아~유럽 항로를 왕복하는 데 통상 90일 정도가 걸리므로, 이날 공급받은 연료유로 중간 급유 없이 유럽까지 갔다 올 수 있다.

HMM은 그동안 주로 싱가포르나 로테르담에서 연료유를 공급받다가 2만4천TEU급 취항을 계기로 GS칼텍스와 국내 급유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HMM은 향후 1~2주 간격으로 잇따라 아시아~유럽 항로에 투입할 같은 규모 선박도 부산서 연료유를 공급받을 예정이라고 문현재 한국급유선선주협회 회장은 전했다.

이날 연료유 공급에는 700t급 2척과 2천800t급 1척 등 3척의 급유선과 예선 2척이 동원됐다.

한번 넣는 기름이 200ℓ드럼통 3만6천여개 분량…세계 최대 컨선
700t급은 각 1천600t, 2천800t급은 4천100t의 연료유를 릴레이 방식으로 알헤시라스호에 공급했다.

HMM이 요구한 '3척 이내 급유선으로 20시간 내 완료' 조건을 충족했다.

처음 시도한 7천t 이상 연료유 공급에 성공함으로써 급유선업계는 날로 증가하는 초대형선 급유 시장 확대를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나라 급유선 업계의 열악한 현실을 드러낸 계기가 됐다.

국내에는 한 번에 4천t 이상을 공급할 수 있는 대형 급유선이 없다.

이번 작업에 동원된 급유선 3척 가운데 2천800t급 15주경호는 원래 정유공장과 육상 저유 기지 사이에 기름을 나르는 수송선이었다.

한번 넣는 기름이 200ℓ드럼통 3만6천여개 분량…세계 최대 컨선
700t급 급유선들로는 7천t이 넘는 연료유를 20시간 이내에 공급하는 게 불가능해 궁여지책으로 수송선을 급유선으로 바꿔서 동원했다.

해양오염방제 장비와 선체 외부 완충장치 등을 급히 설치하고 급유선 등록 절차를 거치느라 애를 먹었다.

문현재 회장은 "싱가포르, 홍콩, 로테르담 등은 7천t 이상을 싣는 대형 급유선들을 갖추고 있어 선사들의 요구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런 여건이 못 돼 해상급유 시장을 외국에 다 뺏기고 있는 처지"라고 말했다.

국내 해상급유 시장 규모는 연간 3조원대로 싱가포르, 홍콩, 로테르담의 1/20~1/30 수준에 불과하다고 그는 설명했다.

우리나라 항만에 기항하는 외항선의 10%만 국내서 기름을 공급받으며, 그나마 대다수는 홍콩이나 싱가포르까지 갈 소량만 구매한다고 덧붙였다.

급유선 업계는 "선박 대형화 추세에 대응해 고부가가치 해상급유 시장을 확대하려면 최소 한 번에 5천t 이상을 공급할 수 있는 대형 급유선 확보가 시급하며,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주문했다.

현재 국내서 운항하는 급유선들은 대부분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 일본에서 도입한 중고선으로 선령이 25년을 넘을 정도로 노후화도 심각한 수준이다.

문 회장은 "새 배를 건조하는 데 150억원 이상, 선령 10년 미만 중고선은 50억~60억원에 이른다"며 "영세한 선주들로선 엄두를 못 낸다.

정부가 지어서 운영을 민간업체에 위탁하거나 저리 정책자금을 지원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