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썰렁한 코엑스 > 코로나19 확산으로 마이스업계가 최악의 불황에 맞닥뜨렸다. 지난달에 이어 이달 행사 대다수가 취소된 서울 삼성동 코엑스가 텅 비어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 썰렁한 코엑스 > 코로나19 확산으로 마이스업계가 최악의 불황에 맞닥뜨렸다. 지난달에 이어 이달 행사 대다수가 취소된 서울 삼성동 코엑스가 텅 비어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한창 바쁠 시기인데…. 공장 문을 닫은 지 벌써 두 달째입니다.”

업계 1, 2위를 다투는 전시디자인회사 나라디자인의 박창균 대표는 얼마 전 경기 남양주 공장을 급매물로 내놨다. 회사 설립 20년 만에 어렵사리 마련한 알토란 같은 자산을 팔기로 작정한 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이다. 회사는 일감이 끊기면서 지난달에만 수십억원의 피해를 입었다. 박 대표는 “당장 한 푼이 아쉬워 동네 주민들에게 월 130만원씩 주고 맡긴 공장 청소일도 끊었다”고 털어놨다.

코로나19 사태로 마이스(MICE:기업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회)업계가 사상 초유의 줄도산 공포에 맞닥뜨렸다. 코로나19가 발생한 2월부터 행사가 줄줄이 취소돼 업계 전체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셧다운(임시 가동 중단)’ 상태에 빠졌다. 전시장은 물론 전시주최사(PEO)와 국제회의기획사(PCO), 이들에게 일을 받는 디자인, 서비스 등 하도급 회사까지 도산 공포가 도미노처럼 번지고 있다. 업계에선 4000여 개 기업, 4만3000여 명 마이스 종사자의 생존은 물론 연 3조원이 넘는 ‘K마이스’ 기반이 송두리째 휘청이는 ‘극단적 위기’라는 말이 나온다.
15개 컨벤션센터 행사 취소 410건…年 3조 규모 'K마이스' 휘청
2~4월 전시회 취소 72건

2일 한국경제신문 집계에 따르면 서울 코엑스와 경기 고양 킨텍스, 부산 벡스코 등 전국 15개 주요 대형 전시컨벤션센터는 지난달에만 410건의 행사가 취소됐다. 전시회가 72건, 컨벤션 등 이벤트가 338건이다. 하반기까지 일정이 꽉 찬 코엑스는 90% 이상 전시회가 취소됐다. 일정을 미루며 급한 불을 끈 행사 280건(전시회 67건·컨벤션 213건)도 상황이 악화할 경우 취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처지다.

전시업계는 코로나19 사태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2월 초 세미콘(반도체산업전)을 시작으로 코리아빌드, 스마트공장·자동화산업전, 서울리빙디자인페어, 의료기기·병원설비산업전 등 대형 전시회가 잇따라 취소됐다. 업계 추산 피해액만 2160억원에 달한다. 이병윤 한국전시주최자협회 전무는 “전시회 성수기인 5~6월까지 코로나19 사태가 이어지면 전시업계의 줄도산 사태가 불가피하다”며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문제는 업계 특성상 코로나19의 여파가 하반기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1년 주기로 열리는 행사 특성상 단기간 피해 복구가 쉽지 않아서다. 취소로 인한 참여 기업 출품료를 내년 행사로 이월하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내년 매출까지 만신창이가 될 상황이다. 코리아빌드 주최사인 메쎄이상의 조원표 대표는 “올해 행사 취소로 손해를 본 매출만 70억원”이라며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더라도 내년까지 손해가 이어질 수 있어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정부 행사 입찰까지 실종

각종 회의, 학술대회 등을 진행하는 컨벤션 분야도 ‘패닉’ 상태다. 지난달 23일 정부가 코로나19 경보 단계를 ‘심각’으로 격상한 이후 정부,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부문의 행사 운영대행 입찰이 눈에 띄게 줄었다. 한·러 지방협력 포럼과 국제 안전도시 아시아연차대회 조직위원회는 지난주 조달청의 국가종합전자조달 사이트 나라장터에 올린 운영대행 입찰공고를 거둬들였다. 행사 개최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대행사를 선정할 경우 보상책임을 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홍국 한국마이스협회 사무총장은 “정부까지 사업 진행을 중단하면서 2~4월 석 달 동안 기업회의, 컨벤션 행사가 줄면서 업계가 최소 3000억원이 넘는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약 1조1000억원 규모의 국제회의기획업 연간 전체 매출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수치다. 전시업계 피해액 2160억원을 포함하면 전체 마이스업계 피해는 5000억원이 넘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공입찰을 따내려는 업계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주 대한지방자치연구원이 시행한 행사 운영대행사 선정 입찰에는 평소보다 2~3배 많은 14개 기획사가 참여했다. 일거리가 줄면서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행사를 따내기 위해 묻지마식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의 긴급융자 지원 등 지원책이 ‘그림의 떡’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입찰에 필요한 신용등급 평가에서 추가 대출이 신용등급을 떨어뜨릴 수 있어서다.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은 전시업계는 관광업종에 속하지 않아 관광기금의 무담보 저금리 지원도 받을 수 없다. 정광민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마이스는 여행·항공, 제조 분야보다 코로나19 사태 여파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산업 특성을 고려한 별도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선우 기자 seonwoo.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