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은 13일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분쟁조정 결과에 대해 내부 검토를 거쳐 수용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신중한 입장을 내놨다.

전날 열린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는 키코 피해 4개 업체에 대한 은행들의 배상 비율을 결정했다.

은행별 배상 금액은 신한은행 150억원, 우리은행 42억원, 산업은행 28억원, KEB하나은행 18억원, 대구은행 11억원, 씨티은행 6억원 등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분조위 결정에 대한 배상 여부는 경영진과 이사회의 의사결정이 필요하다"며 "배상 결정을 면밀하게 검토해 결론이 나오는 대로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

우리은행도 "조정안이 공식으로 접수되면 충분히 검토하고서 배상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했고, 하나은행과 씨티은행 역시 내부절차를 거쳐 분조위 권고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은행들은 이번 분조위 결정과 관련 배상금액은 예상했던 수준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다만, 이를 수용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못 박았다.

우선 2013년 대법원에서 불공정계약이 아니라는 판결이 나온 적이 있는 데다가 소멸시효도 지나 배임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경영진에 보고하면서 법률 검토도 거쳐야 할 사안"이라며 "예전에 법률 검토를 받았을 때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의견을 받은 적이 있다"고 전했다.

은행들 "내부검토 후 키코 분쟁조정 결과 수용여부 결정"
앞으로가 더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현재 나온 배상 금액 255억원은 4개 기업의 피해에 한정된다.

추가 분쟁 조정이 남은 기업이 150여개사로 추산된다.

금감원은 이들 기업에 대해선 이번 분쟁 조정 결과를 토대로 은행에 자율조정(합의 권고)을 의뢰하겠다는 방침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4개 기업에 대한 분조위 권고를 받아들이면 나머지 150여개사와 자율조정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들 기업의 피해액이 수조원에 달해 은행이 물어줘야 할 돈이 수천억원에 달할 수 있다.

게다가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이 난 사안을 소비자 피해 구제라는 명목으로 금융당국이 뒤늦게 배상조정 결정을 내리는 일이 반복되면 은행으로서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단, 대법원판결이 불공정계약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불완전판매는 인정해 23개 기업에 대한 배상비율을 평균 26.4%로 판결했다.

은행들은 이번 결정에 내심 불만을 느끼면서도 거부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대규모 손실 사태를 불러온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로 물의를 일으켜 금융당국에 호되게 '질책'을 당한 시점에서 당국과 대립각을 세우기가 어려운 상황이어서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DLF 사태도 있다 보니 금감원의 이런 결정을 무시만 할 수 없는 상황이라 그런 부분이 내부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다"며 "금감원이 이런 것도 고려해서 이 시기에 분조위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