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대추 등 수확기보다 명절 빨라 "대목 놓칠라"
주말 태풍 예보에 낙과·벼 쓰러짐 피해 우려…농가 초비상
이른 추석에 늦장마, 태풍까지…풍년가 못 부르는 추석 농심
추석을 앞두고 전국 농가에서는 한해 가꾼 작물의 결실을 보기 위해 막바지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다만 이번 추석이 너무 빨리 다가온 까닭에 사과, 밤, 대추 등은 출하 시기가 늦어져 차례상에서 햇작물을 구경하기 힘들 수 있겠다.

뒤늦게 찾아온 장마와 주말께 한반도를 관통할 것으로 예보된 태풍 '링링'은 대목을 흐뭇하게 누리고픈 농민들로부터 풍년가를 앗아가고 있다.

◇ 올해는 햇밤·대추 차례상 올리기 힘들어…너무 이른 추석
"올해 추석이 워낙 이른 탓에 햇밤 수매 물량이 절대 부족합니다.

"
국내 밤 주산지 경남 하동의 밤 수매장. 같으면 추석 연휴를 앞둔 이 시기 수매장은 수시로 햇밤을 몇자루씩 경운기에 싣고 온 농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하지만 수매장 안은 썰렁하기 그지 없었고, 선별기는 전원만 꽂힌 채 조용했다.
이른 추석에 늦장마, 태풍까지…풍년가 못 부르는 추석 농심
물류센터, 거래처 마트 등에 필요한 물량을 공급하기 어려울 만큼 햇밤 출하량이 모자란 실정이다.

수매를 시작한 2일에는 700㎏, 3일에는 200㎏에 그쳤다.

이런 수매량은 최근 10년 사이 최하다.

대추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충북 보은에 드넓게 펼쳐진 대추밭은 가지마다 대추가 주렁주렁 달렸지만, 붉은빛은 눈 씻고 찾아봐도 볼 수가 없다.

올해는 '늦여름 추석'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년보다 열흘가량 앞당겨져 출하가 가능한 대추가 전무한 실정이다.

최근 몇 년간 추석이 수확 철보다 빨라 연간 수확량 대비 추석 시즌 출하량이 10% 정도에 머물렀으나 올해는 이에도 턱없이 모자랄 것으로 예상된다.

산지 사정이 이렇다 보니 유통가에서도 햇대추는 '귀하신 몸'이다.

농협 충북유통의 청주 매장은 5일 현재까지도 햇대추 판매를 개시하지 못했다.

농협 관계자는 "관내인 보은 대추는 수급이 어려울 것으로 보여 생육이 좀 더 빠른 경산 등지에서 햇대추를 공수해 와 판매를 개시하려고 한다"며 "햇대추 수급량이 워낙 적어 시세는 다소 높게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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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운 봄·늦장마에 기형·불량과일 속출…태풍에 낙과 걱정
"이놈은 옆구리에 점이 있잖아요? 울퉁불퉁 짱구처럼 생긴 이놈도 제사상에 오르긴 힘들어요.

"
국내 배 주산지 전남 나주시 봉황면의 햇배 선별장에서는 2등급 기준 이하 '못난이' 배를 유난히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올봄 나주에서는 개화기를 1주일여 앞두고 아침 기온이 영하 4.5도까지 떨어지는 꽃샘추위가 닥쳐 배꽃이 좀체 피어나지 않았다.

가지에 열매가 열리는 비율인 착과율이 작년의 반 토막 수준으로 떨어졌고, 열매가 맺혀도 저온 피해 탓에 발육이 부진하고 모양은 제멋대로인 기형 과(果)가 속출했다.

나주시농업기술센터가 전수조사해보니 전체 재배면적 1천990㏊ 가운데 86%에 달하는 1천716㏊에서 저온 피해 현상이 발생했다.
이른 추석에 늦장마, 태풍까지…풍년가 못 부르는 추석 농심
사과는 그나마 사정이 좀 나았다.

사과의 고장으로 불리는 충남 예산에서는 차례상에 오르는 홍로 수확이 한창이다.

예산군에 따르면 올해 지역 내 전체 사과 수확량은 1천200여개 농가에서 3만여 t 정도로 예상된다.

이는 평년 대비 2∼3% 많은 것이다.

올해 초봄에는 낙과가 없었던 데다 여름 폭염 일수도 짧고 강수량이 적었던 덕분에 탄저병 발생률이 낮았던 까닭이다.

다만 사과·배 농가 모두 가슴 졸이며 날씨 예보를 주시하고 있다.

기상청이 이번 주말 제13호 태풍 '링링'이 한반도를 관통할 것으로 예보하면서 낙과 피해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이번 태풍은 많은 비뿐 아니라 엄청난 강풍까지 동반할 것으로 보인다.

최대시속 162㎞의 강풍이 과수 농가를 휩쓸고 지나간다면 추석 대목은 물론 한해 노력이 모두 허사로 돌아가게 된다.
이른 추석에 늦장마, 태풍까지…풍년가 못 부르는 추석 농심
예산군 신암면에서 1만9천여㎡ 규모로 사과 농사를 짓는 이재수(68) 씨는 "봄에는 냉해, 여름엔 가뭄과 폭염, 가을엔 태풍까지 계절마다 기상 요인 때문에 가슴이 타들어 가는 심정"이라며 "과수는 가격 영향을 많이 받으니까 생산량이 늘어도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착잡한 표정으로 나무에 방풍막을 치고 가지에 지지대를 받쳐 주며 태풍 피해가 없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 풍성한 결실에 감사…제값 받기가 관건
"농사는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해요.

올해는 고맙게도 태풍이 다 비껴가서 풍년입니다.

"
전국 유면 곡창지대인 전북 김제에서 15년째 벼농사를 짓는 이상수(55) 씨는 손으로 잘 익은 벼를 매만졌다.
이른 추석에 늦장마, 태풍까지…풍년가 못 부르는 추석 농심
봄부터 가을까지 비와 바람, 그리고 햇살을 한몸에 받은 벼는 금방이라도 고개를 숙일 듯 쉼 없이 출렁였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짙푸른 여름빛을 뽐내던 벼 이삭은 어느새 통통한 황금빛 결실로 물들었다.

벼가 자란 검붉은 흙은 수분을 가득 머금어 한눈에 보기에도 적당히 윤기가 흘렀다.

김제는 지난해 기준으로 논 면적 2만560㏊로 전남 해남의 2만988㏊에 조금 못 미치는 전국 2위에 자리한다.

이른 추석에 올해는 아직 수확하지 않았지만, 늦어도 이달 중순부터는 한해의 결실을 거둘 예정이다.

햅쌀 수확의 설렘에 마냥 들뜰 시기지만 올해 농가 작황이 대체로 좋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쌀값 안정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수확기에는 80㎏ 기준 쌀값은 평균 19만3천원 선이었지만, 이후 공급과잉과 소비감소 등의 영향으로 하락세가 뚜렷해 현재는 18만원 후반대로 내려왔다.

쌀의 과잉생산은 앞으로도 지속할 것으로 예상돼 수확기를 맞은 농가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쌀값 책정과 정부의 지원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이른 추석에 늦장마, 태풍까지…풍년가 못 부르는 추석 농심
전국 곶감의 60%를 생산하는 경북 상주도 올해 감나무마다 흐뭇하게 결실 맺었다.

비가 예년보다 많은 내리는 편이지만 탄저병 등 병충해가 크게 발생하지 않아 연원동·남장동·중동 등 감 생산지 대부분이 올해는 좋은 작황을 올렸다.

흐뭇한 작황 소식에 각 농가는 생감을 건조해 먹기 편한 곶감을 만들고 있다.

매년 10월 중순부터 11월 초 사이 생감을 따면 껍질을 깎아 건조장에서 말리는 공정을 거쳐 30∼45일 만에 곶감을 만들어 낸다.

곶감 농가는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냉동창고에 보관하다가 설 대목에 70%를, 나머지 30%는 추석 때 출하한다.

지난해 말과 올 초 사이 곶감 1만t을 생산해 설날에 7천t을 판매하고 3천t은 추석에 방출한다.

감은 작년산이지만 곶감은 올해산인 셈이다.

올해 추석에 나오는 곶감은 모두 냉동창고에서 8∼9개월 동안 보관해온 제품이다.

현재 상주곶감유통센터에서 판매하는 곶감은 2㎏ 기준(35개짜리) 5만원 선으로 예년과 비슷하다.

추석을 앞두고 가을장마가 이어지고 있지만 감 재배 농가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