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정' 아닌 '협상' 원한다면 '객관적 기준'부터 합의하라
사람들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는 정보나 조건에 반응하지도, 평가하지도 않는다. 뭔가에 대해 평가할 때는 마음속에 자기만의 기준을 근거로 내린다. 협상에서 당신이 어떤 조건을 제안하거나 가격을 제시했다고 하자. 상대는 당신의 제안을 듣고 마음속에 있는 기준점을 바탕으로 평가한다.

`‘가격이 비싸다’ ‘품질이 미흡하다’는 평가는 어떤 기준점이나 기대치와 비교를 한 다음 내리게 된다. “이 정도라면 괜찮아” “아냐, 이 가격은 좀 비싼데”라며 나름대로 평가하고 판단한다. 만약 상대 마음속에 ‘잘못된’ 기준점이 자리 잡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당신이 아무리 얘기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상대를 설득하는 데 실패하게 된다.

협상을 효과적으로 이끌고 싶다면 정보를 제시하기보다는 적절한 기준점을 설정하는 것이 현명하다.

흥정하지 말고 협상하라

협상은 여러 가지 경우가 있겠지만 가격에 대한 것이 가장 큰 이슈가 된다. 물건을 산다면, 일단 낮은 가격에 사려고 할 것이고 반대로 파는 사람은 비싸게 팔고 싶을 것이다. 가격을 놓고 다투지 않는 현명한 협상 방법이 있다. 양측이 인정하는 ‘객관적인 기준’을 가지고 협상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대체로 중간쯤에서 타협하곤 한다. 속칭 ‘반퉁’이라는 표현으로 서로 반반씩 양보해 합의를 보는 방법이다. 이것은 협상이 아니다. ‘흥정’이다. 시장에서 콩나물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런 식의 흥정은 서로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다주지 못한다. 첫째로 서로 감정싸움으로 번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절반 정도 양보했는데 상대가 절반 양보에 동의해주지 않는다면 어떨까?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에 화가 날 수도 있다. 둘째는 협상 결과에 대해 납득이 어렵다.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면 어느 정도 절충점을 찾는 과정에서 흥정은 일어나기 마련이다.

다만 처음부터 흥정에만 몰입하면 제로섬 게임의 늪에 빠지게 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상대가 많이 먹으면 당신은 적게 먹고, 당신이 많이 먹으면 상대는 적게 먹는 것이 제로섬 게임이다. 흥정은 단순한 거래에선 통할지 모르나 좀 더 고차원적인 협상에서 이런 전략은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객관적 기준을 적용하면 불공정하다는 의심을 막을 수 있다.

객관적인 기준에 합의하라

‘객관적 기준’이란 뭘까? 시장가격이나 관례, 전례, 판례, 제3자의 판단 등이다. ‘시장가격’은 현재 시장에서 매매되고 있는 일반적 가격으로 주식가격, 아파트 시세 등이다.

‘관례’는 예전부터 관습으로 굳어진 것, 세월의 지혜로 축적된 결과를 말한다. ‘전례’는 기존에 비슷한 사건이나 상황을 대변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제3자의 판단’이란 해당 사안에 결정을 부탁할 수 있는 전문가 또는 기관, 단체를 말한다. 양측의 주장이 팽팽할 때 제3자인 법원의 판결에 따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어떤 기준을 택할 것인가는 협상 안건에 따라 달라야 하지만 상대가 유리하다고 느끼고 나 자신에게도 유리하다면 금상첨화다. 어느 한쪽에 유리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중립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납득이 된다. 그럼에도 이를 거부하거나 무시한다는 것은 떼를 쓰는 것이요, 억지를 부리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객관적인 기준’부터 합의하고 나면 협상이 거의 타결된 것이라고 봐도 된다. 그런 다음 미세 조정을 한다. 협상 안건에 따라 디스카운트와 프리미엄으로 조절하면 된다. 이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다. 객관적인 기준을 바탕으로 협상을 이뤄내는 능력이 진정한 프로 협상가다.

이태석 <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