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형 조선업계도 붕괴 위기를 맞고 있다. 중국 조선소와의 가격 경쟁에서 밀려 일감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중소형 조선사들이 은행의 보증 기피로 어렵게 따낸 수주마저 포기하고 있어서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경남 통영의 중소형 조선사인 한국야나세는 지난달 170억원 규모의 석유화학제품 운반선 1척의 수주계약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이 선수금환급보증(RG)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RG는 조선사가 주문받은 배를 넘기지 못할 때에 대비해 은행이 발주처에 선수금을 대신 물어주겠다고 보증을 서는 것을 말한다. 선주는 RG 발급을 확인한 뒤 최종 계약에 서명한다. 이를 발급받지 못하면 수주 계약은 자동 취소된다. 산은은 이 선박을 시장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건조 계약을 맺은 ‘저가 수주’로 판단해 RG 발급을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4월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겨우 피하고 자구 구조조정을 진행 중인 STX조선해양도 이달 초 RG 발급에 실패해 대만 선사와 체결한 석유화학제품 운반선 1척에 대한 건조의향서(LOI)를 취소했다. 중소형 조선소들이 RG를 받지 못하자 외국 선사는 물론 국내 선사조차 중국 조선소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국내 해운사인 장금상선과 폴라리스쉬핑은 지난 5월 총 5척의 벌크선을 중국 조선소에 발주했다. 중국 정부가 선사에 선박 건조 대금을 90%까지 대출해주고, 가격도 우리보다 10% 이상 싼 이유도 있지만 업계에서는 RG 발급이 안 되는 것을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금융권은 저가 수주 우려가 큰 중소형 조선사에 대한 RG 발급 중단이 불가피하다고 항변한다. RG 발급을 통해 확보한 선수금으로 연명하는 부실 중소형 조선소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 국책은행 부행장은 “저가 수주로 조선사 경영이 오히려 악화될 게 불보듯 뻔한데 어떻게 RG를 발급해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