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로 규모 키우는 방향성엔 동의…"중국산 범람 역효과 경계"
철강 "업계 자율로 가능할까"…석유화학 "오너의 결단 필요" 지적


전문가들은 30일 정부가 내놓은 철강·석유화학 산업경쟁력 강화방안의 방향성에 대체로 동의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들 업계가 아직 최악의 상황에 부닥친 것은 아니지만, 값싼 중국산의 추격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자칫 방심하다가는 조선·해운업이 겪은 뼈아픈 전철을 그대로 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규모의 경제를 이루고 고부가가치·첨단기술 산업으로 거듭나려면 기업 간 인수합병(M&A)을 비롯한 산업 전반에 대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봤다.

다만, 구조조정에는 필연적으로 진통이 수반되는 만큼 정부 혹은 사주(오너)의 과감한 지원과 결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제5차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글로벌 공급과잉과 값싼 중국산의 추격으로 위기에 처한 철강·석유화학 산업의 활력을 되살릴 방안을 발표했다.

발표에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철강 후판, 강관이나 석유화학 테레프탈산(TPA), 폴리스티렌(PS) 등의 분야에 M&A와 설비 감축을 유도한다는 내용이 중심적으로 담겼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철강과 석유화학은 중국, 인도의 추격을 받는 대표적 업종"이라며 "더욱이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공급과잉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정부가 내놓은 방향성에 동의했다.

중국 등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해도 우리 제품이 신기술과 우수한 품질로 경쟁한다면 승산이 있겠지만, 범용 제품에서는 사실상 품질면에서도 큰 차이가 없어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조선산업의 경우 타이밍을 놓쳐 과도한 공적자금이 투입되고 있다"며 "정부는 기술집약적이고 제품의 품질을 높이는 형태의 구조조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 역시 "공급과잉 문제에 대해 정부가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은 바람직하다"며 "조선업이나 해운업처럼 심각한 상황에 부닥치기 전에 어떤 것을 줄이고 늘릴지 정부와 전문가가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산업연구원 남장근 연구위원은 "석유화학의 경우 현재 업황이 괜찮다고는 하나 규모가 작아서 과당경쟁이 이뤄지고 있다"며 "M&A를 통해 덩치를 키워서 규모의 경제를 극대화하고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원활한 구조조정이 이뤄질 수 있을지에는 다소 우려를 표시했다.

정부는 원칙적으로 구조조정을 업계 자율에 맡긴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김 교수는 "민간에서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외국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지만, M&A 시장이 크지 않고 노사 문제가 걸려 있어 선뜻 나서려는 업체가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석유화학, 철강산업은 국가기간산업인 만큼 정부가 팔짱만 끼고 있어선 안 된다"며 "일단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민간 주도의 구조조정을 유도하고 잘 안 될 경우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연구위원은 최고경영자(CEO), 특히 오너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봤다.

그는 "석유화학산업은 대기업이 많기 때문에 계열사 대표의 뜻만으로는 어렵다"며 "오너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정부는 기업활력제고특별법을 통해 사업재편 의지가 있는 기업을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조언했다.

어느 정도의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기이긴 하지만, 자칫 중국산이 더욱 범람하는 기회를 줄 수 있다는 걱정의 목소리도 나왔다.

오 특임교수는 "후판의 경우 저가 중국산이 몰려오면서 어려움에 봉착한 게 아니냐"며 "생산을 줄였다가 자칫 우리 산업의 파이만 쪼그라들게 하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기술력을 높이는 동시에 중국산 범람에 대응할 수 있는 더욱 근본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고은지 기자 e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