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송금 등 각종 서비스 수수료를 ‘무제한 이용제’ 등 이동통신사의 정액제 요금 체계로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섰다. 은행은 서비스 수수료를 건당 기준으로 매기고 있다. 소비자 편의를 높이고, 장기적으로 대표적 비(非)이자이익인 수수료 수익을 높이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이통사 '무제한 요금제' 처럼 송금·이체료 기간별로 부과…은행, 수수료 체계 '정액제'로 바꾼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국민 등 일부 시중은행은 최근 SK텔레콤 KT 등 국내 이통사의 정액제 요금 체계를 분석하고 은행 수수료 부과 시스템에 적용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지금처럼 은행 간 이체·해외송금 등 금융서비스 이용 건별로 정해진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식에 더해 정액제를 추가하기로 했다. 매월 또는 연간 단위로 정해진 수수료를 내면 이 기간에 여러 서비스를 추가 수수료 없이 이용하도록 한다는 설명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일부 은행은 연내 새로운 방식의 수수료 부과 체계를 선보일 수 있을 정도로 속도를 내고 있다”며 “송금 등 원하는 서비스만 선택해 정액제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들은 단순한 금융 거래뿐 아니라 프라이빗뱅킹(PB)을 통해 제공하는 증여·상속·절세 등 자산관리 서비스까지 정액제 요금에 포함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정액제를 시행하면 절대 수수료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감안해 개인이 아니라 기업금융부터 적용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무역금융 등 각종 수수료 결제가 잦은 중소·중견기업들은 건별로 부과되는 은행 수수료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이 같은 다양한 수수료 체계를 반기는 분위기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과거에 비해 가격 결정의 자율성을 인정해주는 분위기여서 새로운 수수료 부과 방식을 내놓을 수 있게 됐다”며 “다만 수수료 부담이 커질 수 있어 소비자의 거부감을 줄이는 방안을 함께 모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수수료 체계 개편은 은행 수익성과도 관계가 있다. 저금리 여파로 예대마진(예금과 대출의 금리 차이로 인한 수익)이 줄면서 은행의 핵심 수익성 지표인 순이자마진(NIM)은 지난 2분기 역대 최저 수준인 1.5% 안팎까지 주저앉았다. 국내 은행의 총이익 중 비이자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4년 기준 10% 정도다. 미국(37%), 일본(35%), 독일(25%)에 한참 밑도는 수준이다. 자산관리나 부동산 투자 등 각종 자문 서비스가 사실상 ‘공짜’로 이뤄지는 경우도 많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렇다 보니 은행들은 각종 수수료를 포함한 비이자수익 확대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임형석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경기 침체와 대출 수요 둔화 등을 겪은 일본 은행들은 복합점포와 자산관리 서비스 확대를 통해 수수료 기반을 늘렸다”며 “선택 폭 확대 등 서비스가 개선되면 소비자도 수수료 체계 개편을 무조건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