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력 척도' GDP의 몰락? 또 불거진 한계론
세계 경제를 80년 지배해온 국내총생산(GDP) 통계가 또다시 한계론에 부딪혔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사진)는 25일 GDP 통계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다며 새 지표를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GDP가 디지털 기술 등 시대 변화를 담기 어려운 데다 국민 행복과도 괴리돼 있다는 점에서다. GDP 숫자의 함정은 이미 많은 학자들이 지적해왔다. 하지만 GDP 통계를 주관하는 한은까지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우버택시 못 담는 GDP

이 총재는 이날 경제전문가들과 경제동향간담회를 열고 “GDP가 일국의 경제 규모와 성장 속도, 물질적 번영의 정도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이지만 품질 차별화가 가능한 서비스업 비중의 증가, 디지털 경제 확대 등으로 그 신뢰성이 점차 하락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GDP 신뢰성에 대한 의문은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 더 커질 것”이라며 “GDP 통계의 한계점을 보완하고 신뢰성을 제고하겠다”고 말했다.
'경제력 척도' GDP의 몰락? 또 불거진 한계론
GDP란 한 나라 안에서 생산된 최종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가치를 모두 합한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1조4351억달러의 부가가치를 생산했다. 세계 11번째 경제대국이라는 자부심은 이 GDP 총량에서 나온다. 한 해 GDP 증가율, 즉 경제성장률은 정부 정책의 성패를 평가하는 잣대다.

하지만 GDP통계가 경제활동을 다 못 담는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 총재는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기사를 인용했다. 학생들이 학원에 가면 학원비가 통계에 잡혀 GDP가 증가한다. 그러던 이들이 유튜브에서 무료 강좌를 들으면 GDP는 감소한다. 온라인 쇼핑, 인터넷 뱅킹 등이 발달하면 소비자 후생은 늘어난다. 하지만 시설투자가 줄어들면서 GDP는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차량공유 서비스인 ‘우버’ 또한 기존 택시와 비슷하지만 GDP로 다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GDP는 삶의 질에 무관심”

이 총재는 “최근 GDP 전망이 새로 발표될 때마다 관심이 매우 높은데 GDP 0.1~0.2%포인트의 차이가 과연 어느 정도 의미가 있는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도 말했다. 전날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0%에서 2.6%로 낮췄다.

하지만 성장률 숫자에 지나치게 매달려선 안된다는 것이 이 총재의 견해다. 기술 변화도 문제지만 GDP 통계방식 자체도 한계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2008년 프랑스에서 GDP 대안을 논하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가 구성된 점을 언급했다.

위원회를 주도한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GDP는 삶의 질에 관심이 없다”며 새 지표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GDP에 잡히지 않는 교육과 여가, 행복감 등을 반영해 정책목표로 삼자는 주장이다.

국내에선 정권마다 성장률 숫자를 목표로 내세울 정도였지만 최근 분위기는 다소 다르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는 “최근 몇 년간 성장률보다 가계의 실질소득 증가율이 현저히 낮았다”며 “국민 행복 관점에서 보면 GDP는 적절치 않은 정책 지표”라고 말했다. 예컨대 ‘국내’ 경제활동을 대상으로 하는 GDP의 특성상 외국자본이 많이 들어올수록 성장률에 유리하다. 하지만 고용 등 국민 삶의 질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한은 관계자는 “경기침체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돼 ‘20세기의 위대한 발명’으로 불렸지만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 기준과 별개로 후생수준을 반영한 새 지표를 개발하는 것도 방안”이라며 빅데이터 활용방법 등을 과제로 꼽았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