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값 줘야 부실 없다] 은행 송금 수수료, 미국의 2% 불과…M&A 자문료 0.1%까지 떨어져
한국에서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은 유독 ‘제값’을 받지 못해 경쟁력을 잃고 있다. 대표적인 게 은행 증권 자산운용 등 금융산업이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매년 구조조정 대상으로 거론되지만 여전히 천수답 영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관치(官治) 그림자 속에 보이지 않는 가격 규제가 여전한 데다 무형의 금융서비스는 ‘공짜’나 다름없다는 풍조 탓이다. 회계 법률 등과 같은 지식서비스산업도 마찬가지다.

○공짜 은행 서비스 수두룩

은행은 원가도 안 되는 수수료를 받은 지 오래다. 100여 가지가 넘는 은행 서비스 수수료 항목 중 ‘0원’인 게 상당수다. 예컨대 대다수 은행이 인터넷뱅킹을 통해 다른 은행으로 송금할 때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 이에 비해 미국은 17.5~25달러(1만9000~2만7500원), 영국은 25파운드(4만3900원)를 받는다.

자동화기기(ATM) 이체 수수료도 국내에서는 타행 ATM을 이용해 송금(영업시간 내 이용시)하면 건당 400~1200원의 수수료를 낸다. 미국에선 이 수수료가 18.35~45달러, 영국은 25파운드다.

송금 서비스 등에서 제값을 받지 못하는 국내 은행들은 실적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지난해 국내 은행권의 순이자마진(NIM)은 1.79%로 미국 은행(3.10%)의 절반 수준이다. 하영구 전국은행연합회장은 “경기 위축 등으로 은행이 경영난에 빠지면 결국 막대한 국민 세금을 쏟아부어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제값 줘야 부실 없다] 은행 송금 수수료, 미국의 2% 불과…M&A 자문료 0.1%까지 떨어져
○중국에 M&A 매물 몰려

인수합병(M&A) 등의 자문을 지원하는 기업금융(IB) 분야는 더 심각하다. 우리금융지주가 2013년 말 우리투자증권 등을 NH농협금융지주에 팔면서 매각주관사인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에 지급한 자문수수료는 10억원이었다. 전체 거래 규모(1조500억원)의 0.095%다. 외환위기 당시 거래금액의 4~5% 수준에서 2000년대 후반 0.5%로 내려온 국내 M&A 자문수수료가 하한선 없이 떨어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미국 M&A 시장에서는 거래 규모와 관계없이 자문료 하한선이 300만달러(약 33억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들은 10억달러 이상 대형 M&A 거래시 자문사에 최소 거래금액의 1% 이상을 수수료로 준다. 우리투자증권 매각 규모라면 적어도 105억원을 수수료로 지급한다는 얘기다.

기업공개(IPO)나 회사채 발행 등의 수수료는 더 짜다. 예금보험공사와 한국전력, 자원 공기업 등의 시간외 대량매매(블록딜)나 회사채 발행 수수료는 ‘0원’인 사례가 드물지 않다. 자문사를 뽑을 때 리그테이블(IB 거래 실적) 순위가 높은 증권사에만 참여 기회를 주는 경우가 많다 보니 수수료를 받지 않더라도 일단 실적부터 쌓고 보자는 후발 증권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IB업계 관계자는 “세계 IB들이 좋은 M&A 매물을 중국 기업에 가장 먼저 소개하고 한국 기업은 항상 뒷전”이라며 “중국 기업은 자문 서비스의 중요성을 인정해 거래대금의 최저 3% 이상을 수수료로 주지만 한국 기업은 매우 인색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회계감사 보수 최저 수준

금융뿐 아니라 회계 법률 등 지식서비스산업도 제값을 받지 못한다. 글로벌 기업과 비교하면 회계감사 보수는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이다. 2012년 사업보고서 기준으로 애플과 삼성전자의 총 자산과 매출은 비슷한 수준이지만, 회계감사 보수는 애플이 82억원인 데 비해 삼성전자는 37억원이다. 자산총액 121조원의 현대자동차 감사보수는 15억원인데, 자산총액 164조원인 제너럴모터스(GM)의 감사보수는 462억원에 달한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한국 기업들은 글로벌 기업과 달리 공공재 성격의 회계감사를 비용으로 인식하는 데다 기업과 회계사가 갑을(甲乙) 관계에 놓여 있다 보니 감사보수가 계속 낮아질 수밖에 없다”며 “수익성 악화에 회계법인 살림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회계 투명성도 낮아지는 악순환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 0.5%

국내 인수합병(M&A) 자문 평균 수수료율. 전체 거래금액에서 이 비율만큼 지급한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4~5%에서 0.5% 수준으로 떨어졌다. 기업금융(IB) 역사가 짧은 중국에서도 M&A 수수료는 3% 이상이다.

이태명/정영효/하수정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