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블화 폭락에 한국 진료비용 급증…러시아 환자들 잇따라 예약취소
러시아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국내 의료계에 비상이 걸렸다.

한방과 양방 치료를 함께해 외국인 환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서울의 한 병원은 러시아 환자 수가 올해 하반기 들어 감소세(전년 동기 대비)로 돌아섰다. 지난해 이 병원을 찾은 러시아 의료 관광객 수는 1만명이 넘었다. 병원 관계자는 “러시아 환자가 올해 10%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는데 오히려 하반기부터 줄어들기 시작했다”며 “재방문이 필요한 환자들도 방문을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한 달에 400명가량 러시아 환자가 찾는 서울의 또 다른 병원은 러시아 환자들의 예약 취소가 잇따르고 있다. 이 병원 관계자는 “러시아 경제상황이 나빠지자 예약을 취소하는 환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상황이 갈수록 나빠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러시아 의료 관광객은 2만4026명이었다. 2009년 1758명에서 4년 만에 13.7배 늘었다. 의료 관광객 수로는 일본을 이미 제쳤고, 중국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러시아 의료 관광객이 국내 병원에서 쓴 돈은 지난해 592억원이었다. 이 가운데 87%인 515억원을 종합병원에서 지출했다.

올해는 한국과 러시아 간 무비자 협정이 발효돼 한국을 찾는 러시아 환자가 큰 폭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올 들어 석유 가격이 급락하면서 루블화 가치가 크게 떨어졌다. 달러당 루블화 환율은 올해 초 30루블대에서 최근 80루블 수준으로 급락하기도 했다.

급하지 않은 건강검진뿐만 아니라 암·무릎 수술 등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도 방문을 연기하고 있다는 게 의료계 얘기다. 의료 관광객을 국내 병원에 연결해 주는 러시아 현지 에이전시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몽골 등 인근 국가 관광객 방문도 덩달아 위축되고 있다.

러시아 의료 관광은 블라디보스토크 등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곳에서 주로 온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러시아 수도인 모스크바까지 비행기로 9시간 걸리는 반면 인천까지는 2시간이면 충분하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의료비로 수준 높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 최근 러시아 의료 관광객이 몰려 왔다.

한 병원 관계자는 “중국이나 중동 환자는 지금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며 “의료 관광객 유치를 더 다각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