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에 있는 스타트업 기업 ‘오리지널웨이브’. 2010년 창업한 이 회사는 기업 경영철학을 담은 브랜드를 만들어주는 컨설팅업체다. 브랜드 컨설팅뿐 아니라 장기전략 수립, 로고·점포 디자인 등도 컨설팅해준다.

[왜 기업가정신인가] 업종 분류 힘들면 자금지원 거부…학력별 인건비 제한 지침까지
이 회사 김남희 대표는 작년 정부에 창업지원 신청했을 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창업자금을 신청하기 위해 공무원들을 찾아갈 때마다 매번 ‘업종이 뭐냐’는 질문만 받다가 되돌아오기 일쑤여서다.

김 대표는 “디자인과 전략, 상담 등 사업영역이 넓은데, 담당 공무원은 창업지원 규정상 분류업종이 없어 지원 해주기 어렵다고 한다”며 “공무원들에게 우리 회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하다가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소연했다.

한국에서 정부가 내놓은 창업활성화 대책은 부지기수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무수한 대책을 쏟아낸다. 하지만 정작 창업하려는 이들 사이에선 정부 지원책에 대한 불만이 높다. 예술과 경영, 인문학과 과학 등 업종이 점점 다양해지고 창업생태계도 복잡해지는데 정부 지원 방식은 ‘구닥다리’ 수준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창업지원자금 사용처에 관한 규정이다. 서울 역삼동의 스타트업 기업 ‘사운들리’. 이 회사는 TV 콘텐츠 안에 사람은 들을 수 없는 음파를 넣어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스마트폰을 통해 관련 쇼핑앱이 뜨도록 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혁신기술로 인정받아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창업자금도 지원받았다. 그런데 이 자금에는 ‘50% 이상은 기존 인력의 인건비로 쓸 수 없다’는 조건이 달려 있다.

사운들리와 같은 정보기술(IT) 업체는 인건비 비중이 전체 운영자금의 90%를 차지한다는 현실과 배치되는 규정이다. 이 회사 김태현 대표는 “정부는 각종 창업지원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창업지원 관련 규정은 여전히 공장 등 시설투자 중심의 제조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꼬집었다.

문제점은 더 있다. 정부가 제공하는 대부분의 창업자금에는 학력별 인건비 지침이란 게 있다.

기업이 창업지원 자금으로 직원들에게 월급을 줄 때 △고졸 100만원 △대졸 150만원 △석사 학위 소지자 200만원 △박사학위 소지자 25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장현숙 무역협회 기업경쟁력실 연구위원은 “학벌보다 창업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정작 인건비 지침은 학력 위주로 만든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지적했다.

창업 과정에서 꼭 필요한 해외 상품·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정부 지원자금을 쓸 수 없다는 규정도 있다. 해외에서 필요한 상품·서비스를 구입하는 데 창업자금을 쓰는 건 ‘국부유출’에 해당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다 보니 이런 일도 있다. 벤처기업 ‘비바리퍼블리카’는 ‘다보트’라는 모바일 투표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기술력을 인정받아 중소기업진흥공단으로부터 창업자금 1억원가량도 지원받았다. 그런데 비바리퍼블리카는 이 돈을 사업비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서버 사용료로 쓸 수가 없다. 다보트 프로그램이 국내 서버가 아닌 미국의 ‘아마존웹서비스’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 회사는 한 달에 200만~300만원가량의 서버 사용료를 자체 조달해야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창업지원 대책이 ‘생색내기’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창업 관련 사업을 몇 개 내놨고, 이를 통해 지원한 창업기업 수를 발표하는 데 급급하다는 얘기다. 현재 정부가 지원하는 창업 지원사업은 218개, 시행기관도 53곳에 달한다. 중기청이 운영하는 창업보육센터도 전국에 277개나 되지만, 창업을 통해 수익성을 내기 시작한 ‘성공 기업’이 몇 곳인지는 발표하지 않고 있다. 박병원 은행권청년창업재단 이사장(은행연합회장)은 “창업만 하고 개발한 기술과 제품을 팔 수 없는 기업을 양산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정부는 창업자금 지원에 집중할 뿐 판매역량 강화 등 AS에는 관심이 없다”고 비판했다.

■ 특별취재팀

이태명 팀장, 정인설(산업부) 전설리(IT과학부) 윤정현(증권부) 박신영(금융부) 전예진(정치부) 김주완(경제부) 임현우(생활경제부) 조미현(중소기업부) 양병훈(지식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