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설계사를 개인사업자가 아닌 근로자로 인정하는 노동 관련법 개정안이 대거 발의돼 보험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관련 법이 통과되면 최대 3조원을 부담해야 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또 고용안정을 가져올 것이란 기대와 달리 오히려 소득이 줄고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란 분석도 만만찮다. 법안 수혜자인 설계사들도 법안에 일방적으로 찬성하기보다 연쇄 파급효과를 따져보며 이해득실 계산에 분주한 모습이다.

"설계사 근로자 인정땐 보험사 최대 3조 부담"

○근로자 인정시 보험사 부담 3조원

1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이목희 민주당 의원과 심상정 진보정의당 의원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를 근로자로 인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산재보상보험법 개정안을 입법발의한 상태다. 학습지교사, 레미콘기사, 골프장 캐디, 보험설계사, 택배·퀵서비스 종사원 등은 외형상 개인사업자지만 사실상 근로자이기 때문에 각종 노동권을 부여하자는 취지다.

환경노동위원회 전체 회의를 거쳐 법안심사소위에 계류 중인 이 법안들은 정리해고 요건을 엄격하게 하는 등 각종 지원책을 명시하고 있다. 법안이 통과되면 설계사들은 건강보험·국민연금·고용보험·산재보험 등 4대 보험 혜택과 퇴직금을 받을 수 있어 고용의 안정성이 높아질 것이란 기대가 입법의 배경이다.

하지만 보험업계는 기대와 달리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법안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업계가 추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3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이 입수한 보험연구원의 내부 분석 자료에 따르면 생명보험사의 전속설계사 14만7000명에게 추가 소요되는 경비는 최소 1조5000억원(법정복리후생비)에서 최대 1조8000억원(추가 예상 비용 포함)으로 추산됐다. 생보사 전체 사업비의 11~14%, 전속설계사에게 지급하는 총 수수료의 24~29%에 해당하는 액수다. 여기에다 손해보험사의 전속설계사 9만5000명까지 더하면 보험업계 전반으로는 2조4700억~3조원의 비용부담이 예상된다.

○보험설계사도 찬반 엇갈려

법안 수혜자인 보험설계사들도 복잡한 이해관계를 따져본 뒤 무조건 찬성 대신 찬·반이 엇갈리는 분위기다. 대형 손보사에서 10여년간 보험설계사로 활동한 이모씨(47)는 “처음에는 4대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마냥 좋은 법안이라고 여겼지만 실적이 좋지 않은 설계사들이 구조조정될 것이란 얘기가 들리다 보니 이제 판단이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이처럼 혼란스러워하는 이유는 명분은 좋지만 설계사들의 실질적인 이익은 오히려 침해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복리후생 등 보험사의 고정성 경비가 늘면서 보험사들이 보험설계사에게 지급하는 비례성 수수료를 줄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설계사는 학력 연령 성별 정년 제한없이 자유롭게 할 수 있었는데 개정안으로 인해 영업실적과 활동관리를 강화해 겸직이 어려워지는 등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형 보험사의 한 임원은 “보험설계사는 독립적인 지위에서 보험사와 위탁계약을 맺고 활동하는 개인사업자”라며 “이미 보험 관계 법령, 산재보험법, 특수형태근로종사자를 위한 거래상 지위남용 심사지침 등을 통해 보호받고 있어 중복 보호에 따른 비효율이 더 클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금은 설계사들이 개인사업자로서 활동 경비 등을 인정받아 낮은 사업소득세(3.3%)를 내고 있지만 근로소득세(6.6~41.8%)가 적용되면 보험설계사의 수입이 되레 줄어들 것이란 게 보험연구원의 분석이다.

생명보험협회 한 관계자는 “관련 법안이 통과되면 보험사들은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판매실적이 저조한 보험설계사를 구조조정할 가능성이 높은 데다 인터넷을 통한 보험판매 등을 늘리는 등 사업모델 자체를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