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인문학부 1학년에 재학 중인 이모양(19)은 허리를 다쳐 일을 할 수 없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부산의 한 중학교에서 월 40만원 정도인 기초생활수급자 지원금과 사회단체에서 보내주는 약간의 성금으로 어렵게 공부했지만 중학교 때까지 전교 5등 밖으로 떨어져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상황은 달라졌다. 방학마다 외국으로 단기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학원에서 선행학습으로 고교 과정을 끝낸 친구들을 따라잡기가 버거웠다. 결국 고교 1학년 첫 모의고사에서 처음으로 전교 40등 밖으로 밀렸다. 선생님들이 “너희 이건 (선행학습으로) 다 배웠지”라며 정규교과 과정을 뛰어넘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복잡해진 대입 전형도 이양을 괴롭혔다. 지원 대학과 전형에 따라 추가로 학원을 더 다니고, 시간당 20만~50만원 하는 진학 컨설팅 업체를 이용하는 분위기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는 “사교육을 줄이기 위해 입시제도를 바꾸면 거기에 맞춘 새로운 사교육 시장이 생겨났다”며 “돈이 곧 정보를 의미하고 정보는 학업 능력을 의미하는 현행 입시제도에서 큰 박탈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양은 지난해 기회균형 선발전형으로 서울대 문턱을 넘었다. 성적은 정시로도 합격할 수 있는 실력을 갖췄지만 결과적으로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자녀들만 따로 모아 학생을 선발하는 제도의 덕을 본 것이다.

“현행 대학입시 제도는 ‘한국판 카스트제도’를 더욱 굳건히 하고 있어요. 계층 이동을 위한 사다리가 있다고는 하지만 저 같은 저소득층이 쉽게 오를 순 없는 사다리죠.”

이양의 목소리에는 차분하지만 나름의 울분이 담겨 있었다. 요즘 이양의 고민은 여전히 생활비와 학비다. 등록금은 전액 면제받고 있지만 사실상 ‘소녀가장’의 역할을 계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평일에 학교 수업이 끝나면 오후 8시부터 오전 2시까지 봉천동 인근 보쌈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시급은 5500원. 주말에는 고교 3학년 학생과 1학년 학생을 하루종일 가르친다. 각각 월 50만원을 받고 있다. 그렇게 해서 번 돈으로 매월 아버지에게 20만원, 고교 3학년인 여동생에게 15만원을 부쳐준다.

이양의 꿈은 외교관이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공부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요즘은 고시공부도 학원수업을 병행하는 분위기라 책값을 포함해 월 100만원 정도는 필요하다. 이양은 “다른 친구들을 보면 일찌감치 부모 도움을 받아 고시를 준비하는 이들이 많다”며 “(내 경우엔) 매월 생활비가 쪼들리는 상황에서 고시공부를 할 엄두가 안 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처럼 아르바이트를 계속하다간 영영 고시에 도전할 시간을 못 만들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에 시달리고 있단다. 이양의 사례는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공정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온 고시에서도 계층 간 교육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