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회사도, 자동차회사도 아니었다. 올해 무역 1조달러 달성을 이끈 원동력은 정유사들이었다. 시장별로는 인구 6억명의 아세안(ASEAN) 시장이 한국 수출호(號)를 떠받친 일등공신 역할을 해냈다.

4일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한국은 오는 8일 전후로 2년 연속 무역 규모(수출+수입) 1조달러를 달성하며 세계 무역 8강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견인차는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정유사들이 제조한 휘발유 경유 윤활유 등 석유제품이었다. 선박 반도체 자동차 등 기존 주력 수출 품목을 모두 제치고 사상 처음으로 1위에 올라설 전망이다.

석유제품 수출은 올해 1~11월까지 작년 동기 대비 9.8% 늘어난 517억2000만달러를 기록, 전체 수출에서 10.3%를 차지했다. 10대 주력 수출 품목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여 지난해 대비 두 자릿수 감소율을 나타낸 선박과 무선통신기기 수출 부진을 메웠다. 한진현 지경부 무역투자실장은 “석유제품 단가는 작년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수출 물량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며 “경기 침체 영향으로 유럽연합(EU)과 미국 등 선진국으로 나간 석유제품은 크게 줄어든 반면 자동차 보급이 늘어나는 중남미 등 신흥시장에 대한 수출이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올해 전체 수출 규모는 사상 최대 실적을 냈던 지난해(5552억달러)와 비슷할 전망이다. 올 11월까지 품목별 수출 상위는 석유제품에 이어 반도체(461억달러), 일반기계(440억달러), 자동차(430억달러), 석유화학(420억달러), 철강제품(326억달러), 무선통신기기(198억달러) 순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아세안(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 브루나이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10개국에 대한 수출이 크게 늘어났다. 전통적 수출 텃밭이던 중국 미국 등에 대한 수출이 감소 또는 제자리걸음 하는 동안 대(對)아세안 수출은 지난해에 비해 10.1%나 증가했다. 지난달까지 누적 수출(692억1100만달러) 역시 사상 최대 기록을 경신했다. 전체 수출에서 아세안이 차지하는 비중도 전년보다 1.4%포인트 늘어난 14.3%로 올라섰다. 이는 3위 시장인 미국보다 3.6%포인트나 높은 수준이다.

아세안에 대한 수출이 크게 증가한 이유는 삼성전자가 베트남에 연간 1억대 생산 규모의 휴대폰 공장을 건설하는 등 대기업 투자가 잇따르면서 현지로 들어가는 중간재 수출이 큰 폭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