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 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이 내달 1일 발효됨에 따라 유럽산 명품,와인,치즈 등의 관세가 철폐될 예정이지만 국내 소비자들이 가격 인하 효과를 보기까진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대부분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생산하는 유럽산 명품 시계 · 잡화 브랜드는 "당장 내릴 계획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고 명품 화장품 업체들도 '3년 내 관세 철폐' 규정에 따라 올해 안에 가격을 내리진 않을 예정이다. 명품 업체들은 관세 인하분으로 가격을 내리는 대신 마케팅 비용으로 쓸 계획이다.

◆스위스산 시계는 해당 사항 없어

명품 브랜드의 옷과 가방 스카프 가죽소품 등은 브랜드에 따라 각기 다른 정책을 채택하겠지만 당장 가격 인하를 계획한 브랜드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샤넬 한국지사 관계자는 27일 "아직까지 정해진 게 없다"며 "관세 철폐가 적용되는 품목도 있고 안 되는 품목도 있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샤넬뿐 아니라 루이비통 구찌 에르메스 에트로 버버리 프라다 등의 브랜드도 당장 가격을 내릴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구찌그룹 한국지사 관계자는 "구찌그룹에 속한 구찌 이브생로랑 보테가베네타 등 구찌그룹의 모든 제품을 스위스를 통해 유통하기 때문에 이번 한 · EU FTA로 인한 가격 인하 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위스가 EU에 소속되지 않은 탓이다.

명품 시계는 이번 FTA의 관세 철폐 효과를 볼 수 없다. 오메가 롤렉스 IWC 태그호이어 등 시계 제품은 대부분 스위스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신세계인터내셔날(SI)은 아직 미정이지만 아르마니 본사와 가격 인하 방안을 긍정적으로 논의 중이다. 3년에 걸쳐 8%의 관세를 단계적으로 내리게 되는 명품 화장품도 가격 인하 계획이 없다.

S.T. 듀퐁의 국내 유통업체인 S.J. 듀코는 슈트 와이셔츠 등 의류 제품만 내달 중순부터 가격을 약 10% 내리기로 했다. 캐시미어 니트를 제외한 올 가을 · 겨울 신상품부터 적용한다. 249만원대 양복 슈트는 224만원대에,229만원대인 재킷은 205만원대에 판매할 예정이다. 원가가 크게 오른 라이터 만년필 가방 지갑 등은 가격을 동결하거나 소폭 올릴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명품의 수입가가 제품가의 30%에 불과해 8~13% 관세가 인하돼도 가격하락 요인이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와인은 10% 안팎 싸져

유럽산 와인은 당장 가격이 내려간다. 국내 와인 수입 1위 업체인 금양인터내셔날은 내달 1일부터 와인 가격을 평균 11% 내리기로 했다고 이날 발표했다. 품목별 인하율은 5~15%이며 유통 채널별로 인하폭은 각기 다르다. 롯데백화점에서는 이탈리아 와인 '미켈레 키아를로 바르베라 다스티 라 쿠르트'를 13% 인하된 13만원에,프랑스 와인 '마스카롱 메독'을 10% 내린 4만5000원에 판매할 예정이다.

신동와인도 유럽산 와인 150종 전 품목의 가격을 11~13% 내리기로 결정했다. 나라셀라도 '라피트'를 비롯해 자사가 취급하는 유럽산 와인 35종 가격을 5~15% 인하하기로 확정했다. 반면 20% 관세가 3년간 단계적으로 철폐되는 위스키 가격은 유지될 전망이다.

◆신선식품 가격은 변화 없을 듯

관세가 36%인 치즈는 15년 동안 단계적으로 내려갈 예정이어서 소비자가는 큰 변동이 없을 전망이다. 남양유업과 썬리취 모두 "현재로선 가격 인하가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이마트는 1만9500원인 프랑스산 가염 및 무염 컵버터(250g)를 49% 할인된 9900원에 판매하는 등 일부 품목을 한시적으로 할인 판매한다. 삼겹살과 고등어 등 신선식품 가격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민지혜/임현우/조미현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