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과거 전략기획실 역할을 할 그룹 총괄조직을 다시 만들기로 한 것은 업종 간 경계가 사라지는 글로벌 산업경쟁 질서 재편 과정에 보다 공격적이며 주도적으로 대응하려는 포석으로 받아들여진다. 계열사들이 한몸처럼 빠르게 움직이며 신사업을 발굴하지 않으면 변화의 속도에 뒤떨어질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이건희 회장이 지난 3월 경영일선에 복귀하며 일성으로 "지금이 진짜 위기이며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앞으로 10년 뒤엔 삼성의 대표상품이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강도 높게 지적한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는 시각이 많다.
무엇보다 미래사업을 총괄해온 김순택 부회장에게 새로 생기는 그룹 총괄조직을 맡기는 대신 이 회장의 분신으로 여겨져온 이학수 삼성전자 고문과 전략기획실 시절 그룹 재무 총책을 맡았던 김인주 삼성전자 상담역을 경영일선에서 퇴진시킨 점이 주목할 만하다. 형태상으로 전략기획실과 같은 조직을 복원하더라도 과거의 부정적 이미지 및 잘못된 관행과는 단절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의 경영 승계와 함께 미래사업 육성에 속도를 낼 수 있는 새로운 경영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시도라는 게 일반적 평가다.


◆삼각 편대 스피드 경영체제 가동

삼성은 그동안 '회장-전략기획실-계열사'로 이어지는 삼각편대 경영을 통해 오너의 의사결정을 보좌하고 일사불란한 실행체제를 갖춰왔다. 이 같은 시스템은 고(故) 호암 이병철 창업주 시절의 비서실과 구조조정본부를 거쳐 전략기획실로 이어지며 그룹 의사결정과 비약적 성장의 핵심축을 맡았다. 2008년 7월 삼성특검의 여파로 전략기획실이 해체된 후 삼성을 둘러싼 위기감이 고조될 때마다 그룹 조직 복원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도 경영의 속도감이 떨어지는 이유에서다. 지난 3월 복귀한 이 회장이 8개월 만에 그룹 조직 복원을 결정함에 따라 삼성은 다시 스피드 경영 체제를 갖출 수 있게 됐다.

그룹 조직이 출범하면 이 부사장이 그룹을 총괄할 때를 대비,조직을 재편하는 역할도 맡을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에서 그룹 조직은 전통적으로 오너의 리더십을 보좌하는 역할을 해온 만큼 '이재용 체제'로의 변화를 주도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이 회장이 이 부사장과 '궁합'이 맞는 인물로 김순택 부회장을 고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옛 전략기획실과는 다른 기능과 역할

그룹 총괄조직 신설과 함께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이 고문과 김 상담역의 거취다. 이 고문과 김 상담역은 옛 전략기획실을 진두지휘한 삼성의 핵심 경영인으로 꼽혔다. 이인용 삼성 커뮤니케이션 팀장은 이 고문과 김 상담역의 인사를 발표하며 이례적으로 '문책'이라는 단어를 썼다. 전략기획실을 잘못 이끌어 그룹에 부담을 준 책임을 인사를 통해 물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 계열사 관계자는 "옛 전략기획실과 새로 신설되는 총괄조직은 완전히 다른 조직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문책 인사를 단행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새 총괄조직의 수장으로 김 부회장이 낙점된 것과 관련해서는 "당연하다"는 반응이 많다. 한 계열사 임원은 "이 고문이 컴백하지 않을 경우 그 자리를 대신할 사람은 김 부회장 밖에 없다는 게 그룹 안팎의 중론이었다"며 "지난해 김 부회장을 승진시켜 신사업을 맡긴 것도 지금의 자리를 대비하기 위해서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김 부회장의 강점은 비서실과 계열사에서 두루 경력을 쌓은 것"이라며 "총괄조직에서 그룹과 계열사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략기획실 역할을 할 총괄조직이 복원됨에 따라 계열사들의 경영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계열사 간 사업 조정,예산 분담 등과 관련된 사안들을 그룹이 신속하게 결정할 수 있게 된 만큼 사업 전반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그룹 조직에도 변화가 있을 전망이다. 현재 삼성에는 사장단 협의회 산하에 업무지원팀,커뮤니케이션팀,법무팀 세 개의 팀이 운영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당초 삼성은 이 조직을 3개실로 확대 개편하는 방안을 검토했었지만 이번 총괄조직 신설로 계획이 바뀔 가능성이 높다"며 "세 개팀을 총괄조직 산하에 두는 방안이 유력하다"고 말했다. 연말 인사의 폭은 당초 예상보다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삼성 관계자들의 공통된 관측이다.

송형석/김현예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