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전자제품 전시회인 CES 2010이 열리고 있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작년 말 정기 인사를 통해 삼성전자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은 이재용 부사장이 7일(현지시간) 오전 9시40분께 모습을 드러냈다. 삼성전자가 대표상품으로 전시한 두께 7㎜짜리 초박막 TV 앞에서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누군가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도 했다.

대화 상대는 미국 디렉TV를 소유하고 있는 미디어 재벌인 리버티그룹의 총수 존 멀론 회장이었다. 두 회사가 진행하고 있는 3D TV 제휴건에 대한 얘기였다.

멀론 회장이 부스를 떠나자 이 부사장은 TV 부문을 맡고 있는 윤부근 사장과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활달하면서도 진지해 보였다. 잠시 후 기자들이 다가가 인사를 건네자 일일이 명함을 교환하며 악수를 청했다. CES 현장을 둘러본 소감을 묻자 "제가 잠시 뒤 미팅이 있어 나가야 합니다. 곧 돌아오겠습니다"며 자리를 떴다. 라스베이거스 한 호텔에서 거래선을 만난 그는 10시20분쯤 다시 부스로 돌아왔다.

하지만 좀처럼 말 붙일 틈이 없었다. 누군가와 오랫동안 통화를 했다. 몇 차례 전화벨이 더 울린 뒤 휴대폰을 내려놓자 다시 기자들이 나섰다. 하지만 이 부사장은 "지금 누구를 만나기로 했습니다. 나중에 하시죠"라며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미국 영화사 드림웍스 최고경영자(CEO)인 제프리 카젠버그가 나타났다. 드림웍스는 삼성전자와 3D TV 콘텐츠 분야에서 전략적 제휴를 맺은 회사다. 오래된 관계인 듯 둘은 반갑게 악수하며 대화를 나눴다.

10여분 뒤 미국의 한 투자회사 대표인 마이클 카힐이 방문했다. 어떤 내용의 대화가 오갔는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상당한 친분이 있어 보였다. 곧 이어 월트디즈니 CEO 로버트 아이그너가 삼성전자 부스에 나타났다. 삼성전자는 디즈니와도 콘텐츠 제휴를 추진하고 있다.

아이그너와 몇 분쯤 대화를 나누자 이번에는 남용 LG전자 부회장이 부스를 방문했다. 이 부사장은 직접 나서 남 부회장을 맞아 3D LED TV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는 부스 소개를 윤부근 사장에게 맡겼다. 시간은 11시10분을 지나고 있었다. 이 부사장은 거래선을 만나야 한다며 큰 걸음으로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불과 1시간30분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행사장을 나가면서 삼성전자 COO를 맡은 소감을 묻자 "이제 맡은 지 얼마 안되는데요"라며 말을 아꼈다.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최지성 사장님(삼성전자 CEO)이 시키시는 것을 해야죠"라며 웃어넘겼다.

삼성전자 COO라는 직책을 맡은 뒤 처음 공식 비즈니스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재용 부사장의 90분은 이렇게 흘러갔다. 초 단위로 사람을 만난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였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이 부사장은 라스베이거스에 머무는 기간 내내 이런 정도의 강도로 거래선들을 만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 부사장은 이날 오후 5시20분부터 약 40분간 소니 전시관에 마련된 이그제큐티브 미팅 룸을 방문,하워드 스트링거 소니 회장과 회동을 가졌다. 두 회사 간의 차세대 LCD 투자 및 3D TV 협력 등 다양한 협력방안이 논의됐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라스베이거스=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