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퀄컴에 2600억원의 과징금을 매긴 지난 7월23일.서울 서초동에 있는 공정위는 밤 늦게까지 전화가 불통이었다. 해외 각국 정부에서 문의전화가 쇄도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것이 세계 휴대폰 칩 기술을 독점하고 있는 퀄컴에 과징금을 부과한 곳은 한국이 처음이었다. 공정위는 당시 퀄컴에 로열티 차별,조건부 리베이트 등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을 이유로 시정명령과 함께 사상 최대 과징금을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언론에 이 사실이 보도되자마자 각국 정부의 경쟁당국들은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정말 불공정 행위에 대한 증거를 잡아냈느냐","퀄컴의 논리에 어떤 식으로 반박했느냐","퀄컴이 공정위에 불복할 가능성은 없느냐"는 등의 질문을 쏟아냈다. 쉽게 말해 자신들은 세계 휴대폰 칩업계에서 공룡으로 통하는 퀄컴을 상대로 엄두조차 못낸 일을 어떻게 한국이 해냈냐는 질문이었다.

공정위는 퀄컴 이전에도 2005년 마이크로소프트(과징금 325억원),2008년 인텔(260억원) 등 선진국들도 함부로 건들기 힘든 세계적인 기업들에 대규모 과징금을 물게 했다.

공정위의 지철호 경쟁정책국장은 "과징금을 부과했다는 것 자체보다 해당 기업과 치열한 공방을 벌여 공정위 조사가 타당했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세계 경쟁당국들이 한국의 공정위를 주시하고 있다. 공정위가 세계 경쟁정책 역사에서 교과서를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주변 아시아 국가들이 부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아시아 지역 공무원들의 공정위 방문 횟수도 부쩍 늘어났다. 공정위가 운영하고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아시아지역 경쟁센터에는 2004년부터 2008년까지 24개국 556명의 공무원이 다녀갔다.

1996년부터 매년 열리는 국제경쟁정책워크숍에는 지금까지 54개국 331명이 거쳐갔으며 국제교류협력단(KOICA)의 경쟁정책 연수과정에는 54개국 204명이 참여했다.

사실 아시아에서 경쟁법이 가장 먼저 만들어진 나라는 일본이었다. 태평양전쟁이 끝난 뒤인 1947년 미국 측이 군수산업으로 떼돈을 번 일본 재벌들을 견제하기 위해 압력을 가한 결과였다. 울며 겨자먹기로 응한 일본 정부로서는 경쟁법 집행의지를 강하게 가질 수가 없었다.

반면 한국은 이보다 34년 늦은 1981년 공정거래법을 처음으로 시행했지만 일본과 달리 처음부터 강력한 집행의지를 갖고 시작했다.

당시 정부는 정부 주도의 개발경제체제를 시장자율 경제체제로 전환시키기 위해선 공정거래법이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아시아에서 한국의 공정위가 경쟁관련 정책과 집행에 있어서 가장 앞섰다는 평가를 받는 배경이기도 하다.

공정위가 그동안 대기업 그룹의 독과점적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정부 주도의 시장을 민간 경쟁체제로 바꾸는 데 일조했던 것도 주변국들의 관심 대상이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화교재벌을 규제하는 데,중앙아시아 나라들은 국영기업을 민영화시키는 과정에서 공정위의 노하우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공정위 심재식 국제협력과 사무관은 "아시아 국가들이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의 영문 버전을 그대로 가져다가 경쟁법 기초를 마련하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