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회사의 비주력 사업인 화학 부문이 불황 속에 실적을 떠받치는 든든한 '효자사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등 주요 정유사의 상반기 전체 매출에서 화학 부문이 차지한 비중은 회사별로 15~25%에 머물렀지만 영업이익 비중은 29.5%(에쓰오일)에서 최대 85.9%(GS칼텍스)에 달했다. 정유사의 석유정제사업 지표인 정제마진(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와 정제 비용을 뺀 것)은 요즘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휘발유 경유 등의 석유제품 가격이 국제 유가 상승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도화설비 투자 잇달아 연기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등 국내 주요 정유사들은 상반기 석유정제사업에서 모두 적자를 냈다. 싱가포르 현물 시장 기준으로 휘발유 단순(1차) 정제마진은 작년 4월 배럴당 -1.42달러에서 지난달에는 -5.08달러로 크게 떨어졌다. 원유 1배럴을 정제해 석유제품을 만들 때마다 5.08달러의 손해를 본다는 얘기다.

그동안 단순 정제 손실을 상쇄하던 고도화설비의 2차(값싼 벙커C유를 휘발유 등 경질유로 바꾸는 것) 정제마진도 지난 3월 이후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석유사업 시황이 악화되자 정유사들은 정제시설 투자 계획을 재검토하고 있다. 향후 석유사업 부문의 유일한 수익 창출 수단으로 꼽히는 고도화설비 투자까지 미루는 상황이다. SK에너지는 최근 인천공장에 짓기로 한 1조5000억원 규모의 고도화설비 완공 시기를 당초 2011년에서 2016년으로 5년 연기하기로 했다. GS칼텍스는 작년 12월 총 3조원 규모의 여수공장 제3고도화설비 중 일부인 4500억원의 촉매 방식 고도화설비(FCC) 투자 일정을 내년에서 2012년으로 2년 늦췄다.

◆믿을 건 화학사업뿐

"더 이상 좋을 수 없다. " 정제 부문에 밀려온 정유회사의 화학 부문이 모처럼 '기'를 펴고 있다. 중국의 경기부양책 등으로 일부 화학제품 공급이 달리고 국제가격이 뛰고 있다. 인도 베트남 지역의 석유화학 공장들이 상반기 정기 보수에 들어가면서 공급량이 감소한 것도 국내 정유사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파라자일렌(PX)과 방향족(BTX · 벤젠 톨루엔 자일렌) 등 연간 280만t의 화학제품 생산 능력을 가진 GS칼텍스는 PX 가격이 꾸준히 상승세를 타면서 큰 수익을 내고 있다. 올초 t당 800달러 안팎에 머물던 PX 가격은 최근 t당 1000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에틸렌 84만t,방향족 66만t,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등 70만t의 폴리머 제품 생산 능력을 지닌 SK에너지도 상반기 화학 부문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두 배 가까이 늘어난 3882억원을 기록했다.

시황이 호전되면서 국내 정유사들은 발빠르게 화학 부문 설비 투자에 나서고 있다. 에쓰오일은 총 1조4000억원을 투입,화학제품 생산 설비를 증설키로 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일본 코스코석유와 합작법인을 설립해 2013년까지 연간 118만t의 PX와 22만t의 방향족 생산공장을 짓기로 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