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통장을 은행에서 증권사 CMA계좌로 옮기려고 해 보니 '예금 이자를 2% 더 주겠다'며 은행직원이 소매를 잡아끌더군요. CMA 지급결제 허용으로 서비스 경쟁의 막이 올라 결국 소비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겁니다. "

증권업계의 숙원인 소액결제업무의 이달 말 본격 개시를 앞둔 황건호 금융투자협회장(사진)은 19일 CMA에 직접 가입한 경험을 들려주며 은행과 증권사들의 무한경쟁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황 회장은 "증권사와 은행 간 고객쟁탈전이 달아올라 부작용도 나오겠지만 결국 금융소비자들의 이익으로 연결될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래도 증권사와 은행 간 기싸움과 신경전이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묻자 "불가피한 경쟁이라면 소비자의 이익과 금융산업 발전을 위해 선의의 경쟁을 벌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액결제업무 허용작업을 주도한 황 회장은 증권사의 경영안정성이 은행에 뒤지기 때문에 CMA로 돈이 몰려가면 시장위험이 커질 것이라는 은행권의 공격에 대해 "오랜 검토 끝에 '문제 없다'고 결론 내린 걸 재론하는 것은 소비자를 현혹하려는 불순한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고 일축했다. "금융시스템이 붕괴되는 상황이 아니라면 증권사들의 유동성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극단적인 금융환경이 전개될 때는 은행예금이라고 더 안전한 것도 아닙니다. "

또 CMA로의 급격한 '머니 무브'(자금이동)로 금리경쟁이 과열되고 경제전반에 부담을 줄 것이란 우려도 과도하다고 주장했다. 황 회장은 "증권과 은행고객의 성향이 다른 데다 대출 등과 연계된 은행거래의 장점이 커 자금이동은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그의 말처럼 CMA로의 급격한 자금유입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계좌 수는 현재 892만3700여개로 CMA신용카드가 본격 출시된 5월 말보다 3.3% 증가했지만 CMA잔액은 38조원대에서 3개월째 제자리걸음이다.

황 회장은 시행 6개월을 맞은 자본시장법에 대해서는 '무리 없이 정착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자본시장의 틀을 바꾸는 큰 변화인 데다 시행시기가 글로벌 금융위기와 맞물리다 보니 일부 문제점이 드러났지만 호주와 영국도 자본시장 통합 조치 이후 정착까지 2~3년 걸린 만큼 과도기적 혼란은 감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펀드 등의 투자상품 가입이 너무 복잡하고 불편해졌다는 지적에는 "투자자 보호를 위한 조치가 오히려 투자자의 불편을 초래하는 측면이 있다"고 인정하고 "이른 시일 내에 개선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약하고 판매사의 책임회피용으로 악용될 것이란 불만을 사고 있는 '표준투자권유준칙'은 대폭 손질 중이며 금융당국과 막바지 조율단계라고 밝혔다.

황 회장은 "협회가 만든 표준투자권유준칙은 '적합한 상품을 권유하고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는 자본시장법의 정신에 따라 모범 안을 제시한 것인데 규제처럼 잘못 해석되고 있다"며 "준칙에서는 큰 틀의 가이드라인만 제시하고 구체적인 절차와 방법은 개별회사가 내부통제차원에서 자율적으로 정하는 방향을 모색 중"이라고 전했다.

또 투자자 보호를 너무 앞세우다 보니 20여개까지 불어난 자격증 숫자를 절반 수준으로 간소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황 회장은 "협회가 전형료 수입 때문에 자격증을 남발하는 것 아니냐는 터무니없는 말도 들리더라"며 "자격제도를 단순화하고 시험비용은 원가수준으로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자본시장법 시행에 이은 CMA통장의 등장으로 금융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발걸음이 본격화됐다는 게 황 회장의 평가다. 그는 "은행의 힘이 압도적인 점이 한국금융시장의 발전을 가로막아왔다"며 "대형 투자은행(IB)을 육성해 시장기능을 활성화하기 위한 규제완화와 혁신을 지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감독이 너무 느슨해 위기에 빠진 미국의 실패 등을 구실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엄격한 규제에 발목잡힌 한국 상황을 잘못 이해한 단견"이라고 꼬집었다.

증권업계에 대해선 스스로 건전성을 지켜나가려는 노력이 긴요하다고 강조했다. "금융위기 국면에서도 드러났듯이 개별 금융회사의 위험이 시장전체의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율규제 강화에 주력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창의성을 발휘하기보다 경쟁사 히트상품을 베끼고 얄팍한 마케팅에 의존하는 후진적인 관행은 '쏠림'현상을 심화시켜 위기를 자초하게 된다"고 일침을 가했다.

"눈앞의 작은 이익 때문에 '자사 이기주의'에 빠지는 것은 업계 전체의 이익을 해쳐 결국 자신에게도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제 막 비상을 시작한 한국 자본시장의 지속발전을 위해 욕을 먹더라도 자율규제를 강화해 나갈 방침입니다. "

백광엽/정동헌 기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