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2' 파산보호 졸업에 금융권 공적자금 상환
'위기탈출'은 시기상조..경기회복이 관건


지난해부터 극심한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로 인해 몰락의 위기상황에 내몰렸던 미국 주요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큰 고비를 넘어섰다.

크라이슬러에 이어 제너럴모터스(GM)가 파산보호 신청 약 40일 만에 이를 벗어나게 됐고 앞서 공적자금을 지원받았던 대형 금융회사들도 상황이 호전되자 일제히 정부 지원자금을 상환했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웠던 일촉즉발의 극심한 위기 상황이 진정되면서 금융시장은 물론 실물 경제도 바닥을 다지며 호전 기미를 보이고 있고, 이런 호전된 여건을 바탕으로 이들 업체는 자구노력을 추진하면서 정상화의 길을 모색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들의 구조조정은 극심했던 위기상황의 한 고비를 넘은 것일 뿐인데다, 경기 회복에 대한 불안감이 다시 고개를 드는 상황이어서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 부활한 '빅2'..판매 회복이 과제
크라이슬러에 이어 GM이 9일 새 법인으로 주요 자산을 매각하는 작업에 착수함으로써 부실을 털어낸 우량 법인으로 새 출발하게 됐다.

이로써 GM은 '뉴 GM'에 자산을 매각하고 이어 새로운 이사회를 구성한 뒤 이달 내로 공식 출범할 것으로 전망된다.

새 GM은 시보레와 캐딜락, 뷰익, GMC 등 4개의 핵심 브랜드를 포함한 우량 자산을 인수해 자체적인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는 친환경, 고연비의 차량을 생산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새 GM의 지분 중 61%는 미국 재무부가 갖고 12%는 캐나다 정부, 17.5%는 전미자동차노조(UAW), 10%는 채권자들이 갖게 된다.

새 GM에는 또 정부가 약속했던 지원자금 중 잔여분인 200억달러가 지원될 예정이며, 새 법인의 주식공모를 통한 상장은 내년 상반기쯤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크라이슬러도 새 법인으로의 자산매각과 함께 파산보호를 졸업했고 최근 이사회 구성을 완료하는 등 노조와 피아트 등이 주인이 된 새로운 지배구조 하에서 회생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로써 미국 제조업의 상징이자 자존심 역할을 했던 GM과 크라이슬러는 그동안 겪었던 어려운 과정들을 뒤로하고 부실청산과 구조조정을 통해 깨끗하고 가벼워진 몸집으로 거듭나게 됐다.

업계에서는 최근 경기회복세와 함께 자동차 판매의 급감 추세가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는 상황인 만큼, 두 업체가 친환경, 고연비의 자동차로 시장을 공략해 과거의 명성을 되찾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 월가도 금융위기 극복?
지난달 17일 JP모건체이스와 골드만삭스 등 미국 정부로부터 공적자금을 수혈받았던 월가의 대형 금융회사들이 일제히 이를 되갚음으로써 공식적인 '위기탈출'을 선언했다.

작년 9월 리먼브러더스의 몰락으로 촉발된 금융위기와 극심한 신용경색,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확대 등으로 벼랑 끝에 몰렸던 금융회사들이 정부 자금을 상환한 것은 그만큼 금융시장의 상황이 호전됐다는 반증이다.

이들 금융업체는 금융위기 발발 후 부실규모가 급증하면서 대규모 자산 상각으로 엄청난 적자를 낼 수밖에 없었고 미 정부의 부실자산구제계획(TARP)에 따라 천문학적인 규모의 정부 지원금에 기대 연명하는 처지로 내몰렸었다.

하지만, 올들어 금융시장의 상황이 점차 호전되기 시작하면서 주가가 상승하고 자금시장에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되자 금융회사들이 정부의 규제와 경영간섭에서 벗어나겠다며 앞다퉈 정부 지원금을 상환한 것이다.

이와 함께 월가 금융회사들은 그동안 지속해온 적자 행진에서 벗어나서 올해 들어 이익을 내기 시작했고, 이를 바탕으로 뉴욕증시의 주가도 3월초 저점을 찍은 뒤 지난달까지 꾸준한 오름세를 지속해왔다.

미 정부가 금융회사의 부실을 털어내주기 위해 마련한 공공.민간 투자프로그램(PPIP)이 갈수록 축소되고 금융권이 이에 대한 흥미를 잃어가는 것도 그만큼 상황이 호전됐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 끝나지 않은 위기..경기회복이 변수
금융위기의 진원지였던 미국에서 이처럼 자동차업계와 금융업계의 구조조정이 한 고비를 넘겼지만, 위기상황이 종료됐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이들 업계는 물론, 미국 경제 전반에 걸쳐 경기침체의 고통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고, 실업률이 9.5%로 두자릿수에 육박하면서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매도 기본적으로 소비자들이 물건을 사주지 않는다면 소생의 길은 요원할 뿐이다.

전문가들은 자동차 업체들이 파산보호를 통해, 금융회사들은 정부의 공적자금 지원이라는 방법을 통해 각각 어려운 시기를 넘겼지만, 전반적인 경제여건이 호전돼 치솟는 실업률이 진정되고 가계가 소비에 나서면서 돈이 제대로 도는 상황이 돼야 비로소 위기를 극복했다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최근 들어 2차 경기부양책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는 등 경기 회복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면서 뉴욕증시의 주가가 조정을 받는 등 금융시장에 불안감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손성원 미 캘리포니아 주립대 석좌교수는 "월가의 대형 금융업체나 대형 기업들은 정부 지원 등에 힘입어 상황이 호전됐지만, 미국의 지방 경기는 아직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면서 "소규모 지역은행들이 문을 닫는 사례가 더욱 늘어나는 등 구조조정이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연합뉴스) 김지훈 특파원 hoon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