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로 기업은행장, 인간개발硏-한경 포럼강연

윤용로 기업은행장(사진)은 "은행 덩치를 키우는 게 능사는 아니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를 겨냥해 다시 움직임이 일고 있는 메가뱅크론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표출한 것이다.

윤 행장은 18일 인간개발연구원(회장 장만기)과 한국경제신문이 함께 마련한 조찬포럼에서 '세계금융위기와 한국 금융산업의 과제'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윤 행장은 "은행은 과연 큰 게 좋은 것인가. 또 한국엔 도대체 은행이 몇 개 있어야 좋은가"라고 되묻는 방식으로 인수 · 합병(M&A)을 통한 인위적 대형화에 회의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윤 행장은 은행 자산을 늘리는 방식의 대형화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했다. 은행산업이 완전경쟁시장이어서 대출금리를 조금만 내려도 손님이 몰리는 구조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윤 행장은 "대형화를 해서 강한 은행이 되는 게 아니고 강한 은행이 큰 은행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규모 기준으로 세계 20~30위권 은행을 만든다고 해서 맨해튼에서 알아주는 게 아니다"며 "경쟁력 있고 독창적인 은행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자본시장과 은행산업의 관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증자 등 주식시장을 통해 기업이 조달한 자금은 연평균 9조7000억원이었는데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등의 방식으로 흡수해간 돈이 연평균 11조7000억원으로 2조원 많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외환위기 때 은행이 부실해지니까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10년간 자본시장 육성에 집중해 왔지만 금융위기가 닥치니까 금융업의 버팀목은 은행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며 "이제 은행업과 자본시장의 올바른 발전방향을 모색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은행업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은행들이 △시장보다는 고객으로부터 자금 조달을 늘리고 △충분한 자본을 유지하고 △적정 수수료와 적정 순이자마진(NIM)을 확보하는 게 과제라고 제시했다.

윤 행장은 이와 더불어 수출이나 무역 등과 큰 관련이 없는 내수기업이나 자영업자 등에게도 무차별적으로 외화를 대출해 주는 관행도 고쳐져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치과병원까지 엔화대출을 쓰다 보니 외화차입이 급증했고 이 때문에 글로벌 경색이 닥치자 외화유동성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며 "금융권이 공동으로 바람직한 해외차입의 내용과 방식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