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승우 풀무원 사장(57)에게는 늘 '마니아'란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휴일이면 슬리퍼를 끌고 동네 만화방에서 하루를 보내기도 하는 '만화광'이자,미국 드라마 '24시'에 빠져 지금까지 방영된 157편을 몽땅 다운받아 본 '미드광'이기도 하다. 콜레스테롤 수치를 줄이겠다는 일념으로 50세 늦깎이로 입문한 마라톤은 이제 연간 풀코스 1번,하프코스 4번 정도 완주하는 수준이 됐다.

시쳇말로 '필이 꽂히면' 정신 없이 몰입하는 그의 '천착'(穿鑿) 기질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대상이 있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현대 경영학의 '영원한 구루' 피터 드러커다. 남 사장이 드러커에 눈을 뜨게 된 것은 사실 '술병' 덕(?)이었다. 1990년대 초 알코올성 췌장염(이후 그는 술을 끊었다)으로 40여일간 병원 신세를 질 때 비서가 사다 준 드러커의 '새로운 현실(New Reality)'을 읽게 되면서부터다.

이 책을 통해 드러커가 주창하는 지식사회와 지식근로자에 매료된 남 사장은 이후 국내에 소개된 그의 저서 20여권 중 절반 이상을 섭렵했다. 특히 '프로페셔널의 조건'은 10번 이상 탐독했다. 남 사장은 현재 미국 클레어몬트 대학원 내 '드러커연구소'의 이사회 멤버이기도 하다.

드러커의 '광팬'인 남 사장의 가슴 속에 가장 인상 깊게 남아 있는 구절."모든 성공한 CEO들에게는 단 하나의 공통점이 있을 뿐이다. 분명한 목표가 있고,이를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는 것 외에는 다른 공통점은 없다"(프로페셔널의 조건 중에서).일견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이 말이 남 사장을 사로잡은 까닭은 그가 경영자로서 걸어온 길에 답이 있다. 그에게 '분명한 목표'는 풀무원의 기업 이념이기도 한 '바른 먹을거리'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목표를 향한 그의 노력은 드러커의 표현대로 '부단'하면서도 남달랐다.

서울대 법대를 나온 남 사장은 40세 때인 1992년 연세대 대학원에 들어간다. 십중팔구 경영대학원(MBA)을 생각하기 쉽지만,그의 대학원 전공은 식품공학이다. 만학도인 데다 비전공자라는 핸디캡까지 안고 식품공학을 고집한 이유는 사뭇 명쾌하다. "내가 모르는 제품을 팔 수는 없지 않습니까?"

처음 목표는 석사였지만 지도교수의 부추김(?)에 넘어가 총 8년이 걸려 '치아 우식균(충치 원인균)의 DNA 염기서열에 관한 연구'로 식품생물공학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업자'를 한 수 아래로 보는 식품의약품안전청 전문가들에게도 그의 박사 학위는 '말발'을 세워줬다. 남 사장이 유기 농산물의 농약 잔류치 기준,생수의 미생물 기준 등과 같은 식품안전에 관한 규정을 국내에 도입하는데 앞장설 수 있었던 데도 생물학 공부가 한몫했다.

식품생물공학으로 이론 무장을 했다면,필드 스터디의 주요 터전은 일본의 식품공장들이었다. 남 사장은 1990년대 중반부터 한 달에 한 번꼴로 주말을 이용해 일본 출장을 다녀온다. 두부,콩나물 등이 주력 품목인 만큼 일본이 지닌 세계 최고 수준의 생식품 노하우를 벤치마킹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다닌 일본 출장 횟수가 140여회에 달하고,방문한 일본 중소 생식품 공장만도 200곳이 넘는다.

남 사장의 배움에 대한 열정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요리학원이다. 식품사업을 하면서 요리를 몰라서 되겠느냐는 생각에 임원들과 함께 대표적 요리학원인 수도요리학원을 3개월간 다닌 적도 있다. 손재주가 '젬병'인 탓에 부인에게 한 번 면박당하고선 요리를 접었지만,주부들의 요리 세계에 눈을 뜨게 된 좋은 경험이었다.

'집념가 남승우'의 면모는 일찌감치 고교 시절부터 엿보였다. 경복고 45회 동기생들에게 남 사장은 '전설'로 통한다.

고교 3학년(1969년) 초 그의 성적은 문과 180명 중 160등.그해 도입된 '우열반' 편성에 따라 당연히 '열반'에 배정된 것은 물론 그 중에서도 한참 뒤였다. '오기'가 생기지 않았겠는가. 거의 매일 '타이밍'(각성제)을 먹어가며 '3당4락'의 자세로 처절하게 공부해 학교에서 쓰러지기까지 했다.

그 결과 여름방학이 끝난 뒤 그의 성적은 전교 2등까지 올랐고 결국 서울대 법대에 합격했다. '열반' 2개반 120명 중 재수를 않고 서울대에 들어간 사람은 남 사장을 포함해 단 2명뿐이다.

경복고 우 · 열반 동창들은 아이로니컬하게도 그의 사업에서도 '아군'과 '적군'으로 나뉘어 버렸다. 풀무원 설립 초기 남 사장과 회사를 공동 운영했던 원혜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열반' 반장이었다. 반면 풀무원의 최대 라이벌인 CJ제일제당의 김진수 사장과 식자재 유통회사 CJ프레시웨이의 이창근 대표는 '우반' 출신들이다. 문과에서 줄곧 1등이었고 서울대 상대에 수석 입학한 이 대표는 풀무원 부사장을 거쳐 CJ로 옮겨갔으니 남 사장과는 묘한 인연이다.

남 사장은 네 번의 고시 낙방 뒤 현대건설에 입사했다 원혜영 원내대표에게 500만원을 빌려준 것이 계기가 돼 풀무원 운영에 나선 것이 1981년.당시 5000만원이던 매출은 지금 2만배 성장한 1조원에 이르고 국내외 25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남 사장이 제시하는 풀무원의 비전은 2013년까지 해외 시장에서 2조원,국내 시장에서 3조원 등 총 5조원대 매출의 회사로 키우겠다는 것.풀무원의 현재 외형을 감안할 때 결코 녹록지 않은 목표다. 남 사장이 어떤 의지로 이 같은 비전을 현실화할지 주목된다.

윤성민 기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