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에 대한 정부 · 여당의 투자 활성화와 고용 확대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가 이번 주 중 전국경제인연합회를 방문할 예정이며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도 30대그룹 총수들과의 개별 면담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오는 12일 열리는 전경련 회장단회의를 앞두고 경제난 타개를 위한 투자 확대 등을 압박하는 성격이 강하다는 관측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정부와 여당의 투자 확대 요구가 기업들에 또 다른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다며 투자 문제에 대한 정치적 접근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돈을 쌓아놓고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는 정치 · 사회적 시각과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점을 난감해하고 있다.

◆"규제 풀었으니 대기업 화답할 때"


투자 활성화에 대한 정부와 여당의 움직임은 파상공세에 가깝다. 박희태 대표는 이번 주 전경련 방문을 시작으로 재계 주요 단체와 인사들을 차례로 접촉할 예정이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박 대표가 조만간 전경련을 방문해 다시 한번 투자를 요청할 예정"이라며 "그 이후 개별적으로 대기업 대표들을 접촉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가 대표적인 기업 규제인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없애는 획기적 조치를 취했으니 대기업들도 금고문을 활짝 열어달라"는 게 박 대표의 주장이다.

이윤호 장관도 지난달 말 구본무 LG 회장,최태원 SK 회장을 만난 데 이어 이달에도 30대 그룹 총수들과 면담을 가질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장관이 총수들을 만나는 것도 재정 투자만으로 내수진작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어떻게든 대기업들이 일자리 나누기와 투자 확대에 나서달라는 요청을 하기 위해서다.

이 장관은 기업인들과의 개별 회동과 별도로 오는 12일엔 조석래 전경련 회장,손경식 대한상의 회장,이수영 경총 회장,사공일 무역협회 회장,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등 경제 5단체장과 오찬 간담회를 갖는다.

이에 대해 재계는 투자와 고용 확대를 위한 자체 노력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생존이 최대 과제인 불확실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삼성 현대 · 기아차 LG SK 등 주요 대기업들은 임직원의 임금을 동결하거나 삭감,당초 계획보다 정규직 채용 인원을 늘려잡았다. 해외 유수의 기업들이 감산과 감원에 나서는 속에서도 올해 투자 계획을 지난해 수준으로 유지,하이브리드카 2차전지 LED(발광다이오드) 태양광 등 미래 성장동력 부문에 대한 전략적 투자도 집중하고 있다.

◆"성장 아니라 생존 걱정할 때"

재계는 출총제 폐지를 계기로 투자 확대 목소리가 커진데 대해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2006년 전경련이 출총제를 폐지하면 8개 그룹이 향후 2년 내 14조원을 추가 투자할 것이라고 발표했던 것도 부담이다. 재계는 글로벌 경제위기가 번진 상황이라 당시와 산술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전경련 고위 관계자는 "대기업이 71조원의 현금성 자산을 갖고 있다는 얘기를 하는데 주요 기업들의 대여금이 87조원에 달하고 이 중 1년 내 돌아올 단기 부채가 51조원이나 된다"며 "금융위기로 자금 조달이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 유동성을 무작정 풀라는 것은 무리한 주문"이라고 말했다.

A그룹 고위 임원도 "수출 감소로 공장 가동률이 70% 아래로 주저앉았는데 도대체 어디다 투자해야 돈을 벌 수 있는 건지 알려주면 좋겠다"며 "금고문을 열어야 할 곳은 기업이 아니라 은행"이라고 지적했다.

◆전경련,회장단회의 열어 투자계획 점검

재계는 오는 12일 열릴 전경련 회장단회의에서 투자와 고용확대 계획을 다시 점검할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회장단회의 참석자 및 안건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올해 예정된 투자 및 고용 계획 중 일부를 상반기로 앞당기는 방안 등이 논의될 전망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올해 국내 600대 기업이 예상한 87조원 투자 계획이 지난해보다 2%가량 줄었지만 대규모 감산과 감원에 나서는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적지 않은 규모"라며 "지난 2월 투자 계획을 발표한 이후에도 경제 여건이 더 나빠진 것을 감안하면 단순한 투자 확대보다는 정부와 협의해 마련한 투자계획을 차질없이 집행하는 게 더 현실적"이라고 강조했다.

김태훈/류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