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귀재'인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도 사상 최악의 경기침체 한파를 피하지 못했다. 투자자들에게 보낸 연례 서한에서 투자 비전을 제시하기보다는 회사에 무더기 손실을 끼친 투자 실수를 먼저 인정해야 할 정도로 체면을 구겼다.

'오마하의 현인'으로 알려진 그는 28일(현지시간) 공개한 서한에서 "지난해 투자에서 나는 어리석은 짓을 했다"고 고백했다. 석유와 가스 가격이 거의 최고 수준에 육박했을 때 에너지회사 코노코필립스 주식을 대량 사들인 게 대표적 실수였다고 밝혔다. 그는 또 아일랜드 은행 두 곳이 저평가된 것으로 보여 2억4400만달러를 투자했으나 연말 시장가치는 2700만달러로 폭락해 89%의 손실을 기록했다고 공개했다. 파생상품 투자에서도 수십억달러의 손실을 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벅셔해서웨이의 주당 장부가치는 9.6% 하락해 1965년 이후 최악의 실적을 보였다. 특히 작년 4분기 순익은 1억1700만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96% 급감했다. 연간 순이익은 49억9000만달러로 전년(132억1000만달러)의 37.7%에 그쳤다.

지난해 서한에선 '지금이 주식을 살 때'라는 입장을 피력했던 버핏의 경기전망도 많이 어두워졌다. 그는 "미국 경제가 과거에 겪었던 것보다 더 큰 고통을 맞고 있다"며 "올해 내내 미 경제가 휘청거릴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주가와 경제의 상관관계와 관련,"경제가 비틀거린다고 해도 이것이 증시가 오르거나 내릴 것인지 여부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며 "우리는 실패하지 않고 극복해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투자 전략에 대해서도 "더 투자할 수 있는 여력만 있다면 현재의 주식 하락세를 즐길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버핏은 미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경제 전 분야의 몰락을 피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지만 유동성 공급으로 인플레이션과 같은 후유증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2000년 정보기술(IT) 버블 때도 관련 주식에 투자하지 않고 줏대 있는 투자행태를 보여온 버핏으로서도 지난해엔 묘수를 찾지 못하고 혹독한 한 해를 보낸 셈이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