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사칭 음성녹음 안내…연말정산 앞두고 피해 급증

"안녕하세요. 한국전력에 과 · 오납된 요금을 되돌려 드리니 주민등록번호와 계좌번호를 알려 주세요. "

회사원 박현묵씨(34)는 최근 잘못 납부한 전기요금을 되돌려 준다는 ARS 녹음 전화를 받았다. 경기 침체 등으로 가뜩이나 살림살이가 팍팍해진 박씨는 전기요금을 되돌려 준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별다른 의심 없이 녹음 메시지가 안내하는 대로 차근차근 개인 정보를 입력했다. 주민번호는 물론 은행 계좌번호,비밀번호 등을 고스란히 알려 준 것.전기요금 환급을 기다리던 박씨는 최근 통장 정리를 하다가 깜짝 놀랐다. 전기요금 환급은커녕 처음 보는 인터넷 쇼핑몰로 20만원이 빠져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킹 등 정보기술(IT) 분야 범죄를 오랫동안 수사해 온 검찰 고위 간부인 K씨도 작년 말 신종 ARS 보이스 피싱에 하마터면 속을 뻔했다. 수도세가 잘못 부과돼 환급해 주고 있다는 ARS 전화를 받고 무심코 음성 지시에 따라 주민번호를 입력했다. ARS를 이용한 보이스 피싱은 거의 없었던 탓이었다. 뒤이어 자동이체를 위해 은행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를 입력하라는 음성 지시를 듣고서야 신종 보이스 피싱에 걸려들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ARS 음성메시지로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 정보를 빼내 가는 신종 보이스 피싱이 급증하고 있다. 연말 정산기간을 맞아 세금 환급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겨냥,보이스 피싱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에 접수된 보이스 피싱 피해 접수 건수는 지난해 12월 1740건으로 전년 동기(602건)에 비해 3배 이상 급증했다.

지금까지 보이스 피싱은 주로 한국말이 서툰 필리핀이나 중국 등 외국인이 직접 전화를 걸어 개인 정보를 캐 내는 수법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의 ARS 수법은 일반인들에게 생소해 피해가 늘고 있다.

한국정보보호진흥원 관계자는 "올 들어서도 예년보다 훨씬 많은 보이스 피싱 피해 사례가 접수되고 있다"며 "세련된 목소리로 녹음된 ARS 수법을 쓰는 데다 연말 정산을 앞두고 한국전력 등 공공기관을 사칭하고 있어 피해가 늘어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지난해 발생한 일부 기업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로 휴대폰 번호가 대거 노출된 것도 보이스 피싱이 늘고 있는 이유로 꼽힌다.

한국전력 등 해당 기관에서는 ARS 전화로 이런 내용을 알리지 않으므로 유의해야 한다. 과 · 오납된 요금이나 세금이 있으면 해당 내역을 우편물로 보내거나 시 · 도 · 구청,우체국 등에서 직접 찾아가도록 하고 있다. 한 보안 전문가는 "주민등록번호,계좌번호,비밀번호까지 유출되면 당사자의 PC를 해킹해 인터넷 뱅킹으로 계좌에 들어 있는 돈을 빼내 갈 수도 있다"며 "악성 코드를 잡아 내는 PC 백신 프로그램 등으로 PC 보안을 철저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이스 피싱에 걸려들어 쉽게 개인 정보를 외부에 유출하는 일부터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