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저출산 극복을 위한 과감한 변신에 나서고 있다. 과거 가임기 여성 직장인들에게 '아기와 직장 중 택일'을 강요했던 기업들이 이제 출산·육아를 돕기 위해 지원 방안 마련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 같은 변신에는 배경이 있다.

과거 인력 공급 초과 시대에는 여성을 배려할 필요성이 적었다. 인력은 언제든지 공급받을 수 있는 흔한 재원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제 '저출산 위기의 시대'다.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2010년께면 노동력 부족 현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2020년에는 125만명이 부족할 것이라고 한다.

'인력 확보'는 이제 기업 경쟁력의 키워드가 됐다. 특히 미래 지식 경영사회의 핵심 일꾼이 될 우수 여성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선각적인 기업들이 먼저 뛰고 있다.

가스기구 제조업체인 린나이코리아와 다국적 제약회사인 한국MSD가 그 대열의 선두에 서 있다. 이들은 지난 10월10일 '제1회 임산부의 날'을 맞아 한국경제신문과 보건복지부가 공동으로 마련한 출산·육아 친화기업 대상 대통령상과 국무총리상을 각각 수상했다.

린나이코리아는 1987년 '린나이 어린이집'을 설립해 19년째 운영해오고 있는 국내 대표적인 여성 친화 기업. 강성모 회장은 "아침에 직원들이 아이를 같이 데리고 회사에 나와 퇴근할 때 데리고 집에 가도록 해야 한다"고 방침을 정했다. 이런 방침으로 당시에는 회사 차원의 출산·육아 지원이 흔치 않았던 상황인데도 이 회사는 여직원들에게 90일간의 출산휴가를 제공했다.

노동부 기준 국내 최초의 직장 내 보육시설인 '린나이 어린이집'(인천 남구)은 우선 일반 유치원 못지 않은 뛰어난 교육시설과 각종 예체능 분야 특별활동 등 질 높은 교육 프로그램이 특징이다. 어린이들에게 소풍이나 생일파티는 물론이고 한 달에 한 번 이상 전시회나 공원 방문,어린이 인형극 등의 공연물도 관람시키고 있다.

영아반도 있고,바쁜 직원들을 위해 오전 7시40분부터 오후 6시까지 종일반을 운영하고 있다.

정교사 2명과 보조교사 1명이 상주하며 어린이들을 돌본다.

이런 보육시설을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은 전부 회사가 부담한다. 부모 부담은 간식비와 원아 소모품 구입비 명목으로 월 1만원 정도다.

김범석 홍보팀장은 "자녀를 둔 직원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도록 린나이 어린이집을 19년째 운영하고 있다"며 "린나이코리아는 저출산이 심각한 현 상황에서 여성 직원의 출산과 양육환경 조성을 위해 어린이집 확대 이전 등 직원 복리활동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세계적 제약 기업인 미국 머크사의 한국지사 한국MSD의 출산·육아 친화 경영 또한 남다르다. 이 회사의 출산·육아 지원의 목표는 '우수한 인재를 놓치지 않는다'는 것.

우선 이 회사 여직원들은 출산을 전후해 3개월간 휴가를 쓸 경우 임금을 100% 받는다. 임신 진단 시점부터 출산휴가에 들어가는 달까지 월 반일의 유급휴가도 쓸 수 있다. 이 휴가는 정규직과 임시직 직원 모두 이용할 수 있다. 출산시 병원 비용도 전액 지원받는다. 남자 직원들의 배우자들도 마찬가지다. 산후 조리원을 이용하면 80만원까지 지급 받는다.

아이를 낳은 후에는 근무 시간을 조정해 주기도 하고 아기가 두 살이 될 때까지 하루 한 시간씩 먼저 퇴근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필요하면 파트타임 근무를 신청할 수도 있다.

'패밀리 데이'도 있어 매주 금요일에는 1시간 먼저 퇴근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제도도 도입했다.

한국MSD 관계자는 "우수한 여성 인력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회사 차원에서 제공할 수 있는 것은 가능한 범위에서 모두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계숙 경희대학교 교수(가족학)는 "한 사람의 천재가 10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인재 전쟁' 시대에 기업들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비결은 바로 출산 친화 경영"이라고 강조했다.

박수진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