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영을 안했으면 삼성은 망했을지도 모른다." '신경영 10주년'을 기념해 모인 지난 5일 삼성그룹 사장단 회의. 이건희 회장은 10년 전 상황이 눈에 선한 듯 당시를 회고한 뒤 "그 때를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하다"며 진저리를 쳤다. 1993년 6월7일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 10년간 숨가쁘게 달려왔던 나날들이 파노라마처럼 그의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 생사를 건 승부수 '신경영' 이 회장은 프랑크푸르트 선언 훨씬 이전부터 삼성의 장래를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듬해 2월 미국 LA, 3월 일본 도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이어진 선진국 순례는 이 회장이 '세계 속의 삼성'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직접적 동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당시 그는 "이대로 가면 삼성이 초일류 기업은 커녕 삼류로 전락하고 마는 벼랑끝에 서 있는 현실을 직시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이어 프랑크푸르트 켐핑스키 호텔에서 이 회장이 던진 화두들은 고스란히 삼성의 10년 청사진이 됐다. 지난 87년 그룹 회장에 올라 '제2창업'을 선언한지 6년만의 변신이었다. ◆ '처자식 빼고 다 바꿔라' 이 회장은 기존 관행에 대한 철저한 부인을 요구했다. 특히 당시까지의 '선(善)'이었던 '양(量) 위주' 경영을 '질(質) 위주'로 바꾸라고 역설한 것. "3만명이 제품을 만들고 6천명이 애프터 서비스를 해서야 무슨 경쟁력이 있겠느냐.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한이 있더라도 근본적 원인규명을 통해 품질을 세계 최고 수준까지 끌어올리도록 하라." 불량 생산을 '범죄'라고 규정한 그는 '처자식 빼고 다 바꾸자'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기존 관행들에 과감하게 메스를 가했다. 7ㆍ4제로 알려진 조기출퇴근제, 품질개선을 위한 라인스톱제, 임원과 관리직의 현장근무제 등은 대표적 후속조치들이다. 삼성의 신경영은 외환위기라는 혹독한 구조조정 과정을 거치면서 더욱 그 빛을 발했다. "질 중심의 신경영이 다른 기업보다 한발 앞선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이순동 삼성 구조조정본부 홍보팀장) ◆ 화려한 10년 성적표 지난해 삼성의 매출액은 1백41조원. 국내총생산(GDP, 5백96조원)의 4분의 1에 육박하는 규모다. 수출총액 3백12억달러는 한국 전체 수출의 20%에 달한다. 삼성그룹 상장사 시가총액은 74조8천억원(2002년말 기준)으로 국내 증시의 27%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3년간 세전이익만 33조원에 달할 정도로 탄탄한 이익기반을 다지고 있으며 부채비율은 3백36%(1993년)에서 65%(2002년)로 떨어지는 등 체질도 튼튼해졌다. 해외 소비자들의 삼성에 대한 인식도 수직 상승했다. 영국의 브랜드 조사 전문기관인 인터브랜드사 발표에 따르면 2002년 세계 1백대 브랜드 안에 한국 기업으로는 삼성전자(34위)가 유일하게 포함됐다. 이는 세계 유수의 기업인 나이키(35위) 캐논(43위) 필립스(60위) 모토로라(74위) 파나소닉(81위)보다도 앞선 브랜드 파워다. D램과 CDMA단말기 TV 모니터 등 17개 제품이 월드베스트 상품으로 자리잡았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