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기업의 국내 직접투자가 최근 급격히 줄면서 '외자유치 비상'이 걸렸다. 투자신고서를 이미 제출했던 외국기업들마저 국내 기업환경 악화를 이유로 투자결정을 철회하거나 미루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노사갈등과 지자체간 갈등, 수도권 집중 억제 등 국내문제로 한국 투자를 철회했다는 외국기업들이 적지 않다.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외자의 '썰물' 현상에 대한 현실성 있는 처방책이 급선무로 대두되고 있다. 우량 외국 기업을 대거 국내로 유치해 한국을 '동북아 경제중심'으로 일궈내겠다는 정부의 청사진이 자칫 공염불로 그칠 위기상황이다. ◆ 수도권 규제로 외국인투자 철회 외국인 투자를 가로막는 대표적인 국내 규제는 수도권집중 억제정책이다. 2천만 인구가 밀집해 있는 수도권의 시장 잠재력, 공장 인력과 정보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입지조건 등은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일만한 환경이다. 그러나 수도권 진입을 막는 규제로 인해 외국기업들이 아예 한국을 떠나고 있다. 미국계 투자기업인 페어차일드코리아는 전력제어기와 전력용반도체 등을 생산하는 업체다. 2억4백만달러의 외국인자본이 이미 들어왔고 수출비중도 2001년에 매출액대비 70%를 넘었다. 이 회사는 2001년 3월 경기 부천시에 반도체 제조공장을 증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불행히도 부천시는 수도권정비계획법상 과밀억제권역에 들어가 있었다. 수도권 집중억제를 위해 3천㎡이상 공장 증설을 못하도록 규정돼 있었다. 페어차일드는 당초 한국에 7천만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철회하고 미국에 5천만달러, 부천에 2천만달러를 투자하기로 수정했다. 산자부 관계자는 "수도권내 대기업 공장 증설 허용범위를 6천㎡로 바꿀 예정이지만 비수도권 지자체가 거세게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고 걱정했다. ◆ 노사갈등으로 인한 투자 철회 한라펄프제지를 인수해 설립된 보워터한라는 2000년 9월 세풍제지를 사들이기로 했다. 보워터한라는 중질지 설비 1대를 폐쇄하고 정규직원 1백80명을 감원하는 조건으로 세풍 군산공장을 2억1백만달러에 인수키로 합의(MOU체결)까지 했다. 그러나 세풍제지 노조의 고용승계 주장으로 이 회사는 결국 투자를 포기했다. 보워터한라는 목포 대불공장 옆에 6만평의 나대지를 구입해 생산시설을 늘릴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정리해고 철회와 경영권 참여를 요구하는 노조의 파업과 미국경기 침체로 올해 투자계획을 철회했다. ◆ 지자체 이기주의도 극성 미국 GBT사는 2000년 10월 경기 부천시에 쓰레기처리장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투자규모는 8천2백만달러였고 조건은 25년간 운영후 부천시에 기부채납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사업은 시의회의 반대로 '부결'됐다. 혐오 시설에 대한 주민 반발을 의식한 결과였다. 영국 유통업체인 테스코사가 83% 지분을 갖고 있는 삼성테스코는 광주광역시 남구에 할인매장(5천3백46평)을 열 계획이었다. 그러나 교통영향 평가를 담당하는 광주시와 도로변경을 담당하는 남구청이 교통문제를 먼저 해결하라고 미루면서 건축허가가 지연됐다. 삼성테스코는 교통영향 평가를 우선 실시해줄 것을 희망했으나 광주시측은 판정을 계속 보류했다. 한 관계자는 "주변 중소상인들의 반발이 원인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홈인테리어 유통업체인 영국의 B&Q는 지난 1월 서울 구로동 롯데마트에 1호 매장을 열 계획이었다. 그러나 신축예정인 롯데마트 건축허가가 나오지 않아 투자가 지연되고 있다. 산자부 관계자는 "(B&Q측이) 외국인투자 옴부즈만을 통해 구청장 면담을 신청했으나 거절당했다"며 "롯데마트는 교통영향에 대한 보완대책을 접수했지만 구청의 반응은 소극적"이라고 말했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