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념(陳稔)부총리겸 재정경제부장관이 13일 경기도지사 출마를 위해 부총리직을 공식 사퇴함으로써 40년의 행정관료 생활을 마감했다. 경제부총리를 포함해 모두 4차례나 장관직에 올라 `직업이 장관'이란 말을 들을정도였던 그는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기획예산위원회 위원장과 기획예산처 장관직을 맡은 데 이어 2000년 8월 이헌재 장관의 바통을 이어받아 재경부장관에 취임했다. 지난해 1월 부총리로 승격된 그는 1년8개월간의 재임기간에 경제팀의 `맏형' 역할을 맡으면서 구조개혁과 경제회복이라는 당면과제를 안고있던 우리경제의 최일선에서 경제정책을 진두지휘했다. 진 부총리의 가장 큰 공적으로 꼽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지난달 이뤄진 무디스의한국 국가신용등급 `A'등급 회복이다. 외환위기 당시인 지난 97년 `A1'에서 `Ba1'까지 무려 6단계가 하락한 무디스의한국 국가신용등급은 지난달 `A3'로 회복됐다. 특히 무디스의 신용등급 2단계 상향조정은 진 부총리가 직접 뉴욕을 방문해 무디스 고위관계자들을 만나 강력히 요청한것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경제팀을 이끌면서 정치권 등의 `외풍'을 막아내고 부처간 이견을 원활히 조율하면서 경제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한 것도 진 부총리의 `보이지 않는 치적'으로 꼽힌다. 예산권과 조세권, 금융기관 감독권한 등을 틀어쥐고 있었던 과거의 경제부총리와 달리 정책추진을 위한 수단이 거의 없었던 상황에서 전임자들과 달리 불협화음없이 무난하게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던 데는 그의 친화력과 리더십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지난해 하반기 대기업집단 출자총액제한 완화 등 재벌규제 완화와 관련, 재경부와 공정거래위원회가 이견을 보였을 때도 그는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을 수차례 만나 설득함으로써 합의를 이뤄냈다. 지난해 경제현안을 두고 야당의 비판이 거셀 당시 수차례에 걸친 여.야.정 경제정책포럼을 개최, 야당을 설득해 정치권의 압력을 막아낸 것은 진 부총리가 아니었으면 어려운 역할이었다는 분석이다. 진 부총리 재임기간에 증권시장이 침체에서 벗어나고 기업자금시장의 경색이 해소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로 받아들여진다. 취임당시 600~700대에 머물렀던 종합주가지수는 지난해 9.11 테러당시 400대 중반까지 떨어졌지만 작년 하반기이후 반등에 성공, 900선을 넘나들고 있다. 진 부총리는 2000년 하반기 경제침체와 함께 자금시장이 경색되면서 `제2의 위기설'이 나돌때는 프라이머리 CBO(채권담보부증권)제도와 산업은행의 회사채 신속인수제도를 도입해 급한 불을 끄기도 했다.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150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의 회수전망이 불투명하고 하이닉스반도체 등 일부 부실기업의 처리가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은 것은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대우자동차 매각건은 거의 성사단계에 이르러 이달중 본계약 체결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나 하이닉스의 경우 여전히 마이크론과의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현대투신 매각문제 역시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됐던 미 AIG사가 발을 빼면서 타결시기를 가늠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서울은행과 대한생명 등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기관들의 매각문제도 아직은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적자금은 현재 예보채 차환발행안이 국회에 여전히 계류중이며 공적자금중 예금대지급금과 출연금 등 회수가 사실상 어려운 부분에 대해 상반기중 국회 동의를얻어 국채로 전환하는 방안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진 부총리의 사퇴로 이런 문제들은 후임 경제부총리의 과제로 남겨지게 됐다.진 부총리가 중요한 시기에 물러나면 경제정책의 일관성이 흔들릴 지 모른다고 우려를 표명해온 해외투자자들의 반응도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유의주기자 ye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