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의 첫 과제는 언제나 정치개혁이었다. 그러나 정치권은 여전히 고비용 저효율적 행태를 벗어나지 못한채 사사건건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돈정치는 각종 비리를 양산하며 이미 위험수위에 이르렀고, 여야의 정쟁은 날로 거세지는 양상이다. 때문에 내년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경제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경제신문이 '정치를 바꿔야 경제가 산다'는 연중 기획시리즈를 시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첫번째편인 '불임정치'를 끝내면서 최경환 한경종합연구소장의 사회로 민주당 이재정 의원, 한나라당 오세훈 의원, 이정희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손혁재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등과 함께 우리 정치가 안고 있는 문제점과 그 해법을 찾아봤다. [ 참석자 ] 이재정 < 민주당 의원 > 이정희 < 한국외대 정외과 교수 > 오세훈 < 한나라당 의원 > 손혁재 <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 최경환 < 한경종합연구소장.사회 > ----------------------------------------------------------------- △ 최경환 소장 ='국민의 정부'의 임기가 1년 남았다. 그동안 기업 금융 공공 노사 등 4대 부문은 나름대로 개혁성과가 나타나고 있으나,정치부문은 낙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게 중론이다. 정치개혁의 성과와 한계부터 논의하자. △ 이재정 의원 =집권당 다워지려면 10년은 해야할 것 같다. 30년 이상 야당하다 집권하니 한계가 많다. 집권당의 면모를 갖추기 전에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를 극복해야 했던 어려움도 있었다. 5년 단임 대통령제도 문제다. 5년이란 짧은 기간 입안하고 실행한 정책을 제대로 평가하기는 어려운게 현실이다. 민주당이 지난 1년간 당정쇄신이라는 과제를 놓고 겪은 내부적 진통도 개혁정책을 마무리하는데 한계로 작용했다. △ 오세훈 의원 =경제와 사회는 많이 발전했는데 정치적 틀은 과거의 행태를 그대로 갖고 있다. 전두환 정권때 대통령에게 권한을 집중시켜준 헌법을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가 유지하고 있는게 근본 원인이다. 대통령은 집권당의 총재직을 겸하면서 인사권과 재정권을 휘둘러 왔다. 제왕적 대통령이란 말이 나온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 선진국에선 의회가 행정부를 견제하는데 우리는 집권 여당을 야당이 견제할 수밖에 없다. 상황이 그러하니 국회는 늘 정쟁의 장이 되고 있다. △ 손혁재 처장 =대통령이 제왕적 권한을 갖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달리 생각한다. 대통령에게 그런 힘이 있다면 철도민영화가 왜 안됐겠느냐. 개혁에 대해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기득권을 빼앗는 식으로 나갔기 때문에 개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 이정희 교수 =여당에서 정치쇄신의 바람이 불고 거기에 자극받아 야당에서도 바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금은 정치쇄신의 좋은 기회다. 대통령의 강한 힘을 분산할 수 있는 방법은 순수 대통령제로의 전환이다. 4년 중임제와 정.부통령제가 그 대안이 될수 있다. △ 최 소장 =내년 양대 선거를 앞두고 정치논리를 앞세워 경제논리를 무시하는 각종 정책들이 나오고 있다. 뉴라운드 시대에 포퓰리즘식으로 추곡수매가를 인상하고, 노조의 반대에 부딪쳐 철도민영화 및 주공.토공 통합 등이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 정치논리에 의해 경제논리가 왜곡되는 현상은 개선돼야 한다. △ 이 교수 =정치논리와 경제논리간의 역학관계는 역사적으로 봐야 한다. 과거 발전주의 체제 아래서는 정치논리와 경제논리가 하나로 융합돼 정경유착이란 관례를 남겼다.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경제계는 '정치논리는 떠나라,우린 경제논리로 풀어가겠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것이 국민들을 어느 정도 설득할수 있을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강자가 아닌 약자, 소비자와 근로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정치의 논리이며 그런 논리는 필요하다. △ 손 처장 =IMF 위기가 온 이유중 하나는 정경유착으로 상징되는 뿌리깊은 부정부패다. 정경유착의 정도가 많이 완화되긴 했지만 아직까지 남아 있는게 사실이다. 정치개혁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패방지법의 처리과정에서 정치논리가 개입돼 법의 실효성이 약화됐다. 그것을 끊지 못해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고 생각한다. △ 이 의원 =현 정부가 4대 개혁을 시작했을때 여야는 이에 적극 협력했어야 했다. 정치논리에 의해 정부의 모든 개혁정책이 제약을 받아 제대로 실천되지 못했다. 외국인 자본유입에 대해 국부유출론을 제기한 것부터 시작해 너무 정치적 이해로만 비판을 가해 한계를 드러냈다. △ 최 소장 =정당간에 이념적 차이가 없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복지정책의 경우 다른나라에서는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한 정당은 복지정책의 수혜 집단으로부?지지를 받고 다른 정당은 복지비용을 부담하는 기업으로부터 지지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여야 모두 복지재원을 늘리라고만 한다. 정당의 고유색깔이 없다는 얘기다. △ 이 교수 =공감한다. 정당의 정책기능이 약하다. 유권자들은 비슷한 정책을 가진 보수정당중 같은 사투리를 쓰는 쪽을 지지하는 체계가 고착화됐다. 그러나 희망도 보인다. 민주당은 소시민과 근로자에 가까운 정당임을 표방하고 있고 한나라당은 재벌정책 등에서 보수적 색채를 띠고 있다.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이 원내에 진입하게 되면 현 체계도 점진적으로 개선될 것이다. 정당의 색깔을 보다 뚜렷이 하고 지역구도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 손 처장 =우리 정당은 권력자가 자신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 왔다. 일관된 정책이 뿌리내릴 수 없었다. 이제 특정인에 좌우되지 않고 정책으로 국민에게 호소하는 정당이 돼야 한다. 지금까지 선거는 'B(보스)+α(후보역량)' 체계였다. 예컨대 특정지역에서는 개인역량이 낮아도 특정정당 출신이면 당선됐다. 반면 수도권은 알파가 커야 당선된다. 앞으로는 'P(정책)+α'로 가야 한다. △ 이 의원 =정당간 정책의 차이가 근래에 와서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한나라당 김만제 정책위의장이 민주당에 대해 '사회주의적'이라 비판하면서 비교적 분명한 선이 그어지고 있다. △ 오 의원 =정책정당화를 위해 대선거구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 한 선거구에서 한 명을 뽑는 소선거구제에서는 의원들이 지역구민의 여론을 무시할 수 없어 경제논리에 앞서 정치논리를 내세우게 된다. △ 최 소장 =선거철을 앞두고 기업들이 걱정하고 있다. 정치자금을 내라는 요청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돈선거를 벗어나는 해결책은 없겠는가. △ 오 의원 =나는 지구당 시스템을 비교적 돈이 적게 드는 형태로 짰다. 보통은 1천5백만∼3천만원이 소요되는데 내 경우 상근자를 최대한 줄여 1천만원이 채 안든다. 지금 고비용체제는 중앙당이 필요 이상 비대하기 때문이다. 지구당 조직관리비가 많이 드는 것은 소선거구제 때문이다. 중선거구제나 대선거구제로 가면 비용이 줄어들 것이다. △ 이 의원 =쇄신연대도 중앙당 축소를 주장하고 있다. 총재와 최고위원직을 폐지하고 중앙당에는 각 시.도지부를 대표하는 집행위를 둬야 한다. 고비용을 없애기 위해서는 국고보조와 당 후원금중 절반은 중앙당이 쓰고 나머지는 시.도지부에 할애해야 한다. 또 당원들은 많든 적든 당비를 의무적으로 내야 한다. 당비로 선거경비를 충당해야 한다. △ 최 소장 =선관위에서 법인세 중 1%를 정치자금화 하는 방안을 마련했는데. △ 손 처장 =기업들은 법인세를 내고도 다시 정치자금을 내야 하는 이중부담에 시달릴 것이다. 때문에 그 방안은 부적절하다고 본다. 정치자금은 당비와 국고보조금으로 조달하는게 좋다. 정치는 국민을 위해 하는 것인 만큼 국고를 써도 괜찮다. 당비를 많이 걷으면 보조금도 많이 주고 적게 걷으면 적게 주는 매칭펀드식이 바람직하다. △ 오 의원 =진성당원이 많지 않은 현실을 감안하면 이상에 불과하다. 자기 돈 내고 지구당 행사에 참석하거나 정치적 생각을 반영하기 위해 지구당원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사람이 5백∼1천명이 되어야 매칭펀드 시스템이 돌아간다. △ 이 의원 =우선 정당의 재정운영을 투명하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중앙당 후원회 헌금이 어떻게 들어오는지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다. 개인 후원회도 문제다. 개인 후원회에도 대가성 있는 정치헌금이 들어올 수밖에 없다. △ 이 교수 =정치자금을 정경유착의 접착제로 치부하는 인식도 바껴야 한다. 정치자금은 정치할 때 필요한 운영비다. 투명성을 확보해 정당하게 쓸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게 중요하다. 법인세 일부를 정치자금으로 돌리는 것은 정당한 방법은 아니더라도 국가현실을 봤을 때 도입할만한 제도라고 생각한다. 3억원 이상 법인세를 내는 기업의 경우 그 1%를 정치자금으로 전환하도록 하는 방안도 괜찮을 것이다. △ 최 소장 =우리 정치를 저비용 고효율로 전환하는 방안을 없겠는가. △ 손 처장 =정치가 이렇게 된 데에는 국민의 책임도 있다. 3류 유권자가 3류 정치를 만든다. 필요하면 당비도 내고 당에 가입해 적극적으로 의무와 권리를 다해야 한다. △ 이 의원 =좀 더 좋은 선택을 하려면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갈등관계에 있는 사회구성원들이 컨센서스를 만들어 원만한 발전의 길을 만들어 내야 한다. △ 오 의원 =최근 기득권을 내놓으려는 마음가짐이 돼 있는 정치인들이 비교적 늘어나고 있다. 너무 냉소적으로 보지 말고 정치권에 기대를 가져달라. 정리=윤기동 기자 yoonk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