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관성 없하는 정부의 기업정책과 각종 규제, 노사불안, 사회주의 뺨치는 반기업적 정서, 정치불안…. 기업경영 환경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 나아지기는커녕 더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국내 기업 넷중 하나는 차라리 본사를 해외로 옮기고 싶다고 하소연한다. 한국경제신문이 창간 37주년(10월12일)을 맞아 1백개 주요 기업의 CEO(최고경영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우리의 기업환경에 대한 평가는 40점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에 응한 CEO중 56명이 20~40점이라고 대답했다. 6명은 20점도 안된다고 평가했다. 40~60점을 준 CEO는 37명, 60~80점은 1명에 불과했다. 80점 이상을 매겨준 CEO는 단 한명도 없었다. 굳이 평균을 내자면 37.2점으로 낙제점이다. "기업인들의 엄살로 치부할 수도 있으나 이 정도라면 기업의욕이나 경제활력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전경련 김석중 상무는 지적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기업들은 차라리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하소연한다. '기업이민'이다. 1백명의 CEO중 4분의 1에 해당하는 25명이 본사를 해외로 옮기고 싶다고 느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고향을 등지겠다는 '코리안 엑소더스'다. 기업인들은 그 이유로 '정부의 일관성 없는 기업정책'(40.0%)과 '과다한 규제'(36.0%)를 주로 꼽았다. 대규모 기업집단 지정제도, 출자총액 제한제도 등으로 기업의 투자활동을 억제하고 툭하면 정치논리를 앞세운 각종 조사로 기업인을 매도하는 분위기에서 과연 누가 열심히 기업을 일구겠느냐는 것. 손길승 SK 회장은 지난 7월말 제주도에서 열린 전경련 주최 '최고경영자 서머포럼'에서 "정부의 규제로 기업이 부담을 안게 되면 다른 곳으로 옮기는 방안도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중견 휴대폰 단말기업체인 텔슨전자는 현재의 금융관행이나 대출제한제도 등 규제 때문에 기업을 키우는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본사를 미국으로 옮기는 방안을 심도있게 검토했었다. 기존 기업과 달리 외국기업과 합작으로 신설법인을 세우는 기업들은 이미 본사를 홍콩이나 유럽에 두기 시작했다.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 이후 우리 정부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충족시킨다는 목표 아래 각종 제도개혁을 추진해 왔다. 비행기로 치면 엔진도 고치고 날개와 랜딩기어도 좋다는 수입품으로 교체했다. 하지만 정부의 의도와 달리 승객은 늘어나지 않고 타고 있던 손님들마져 내리려 하는 형국이다. 바꿀 수 있는 것은 다 바꾸었는데도 승객들이 여전히 불안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류변화나 고도에 맞춰 비행기 스스로 항로를 조정하는 자동항법장치를 정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전경련 김석중 상무는 설명한다. 시장의 논리에 따라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외이사제나 집단소송제 같은 서구식 제도를 서둘러 도입하다보니 개혁이 거꾸로 기업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고 있다는 얘기다. 결론은 간단하다. 규제를 과감히 풀어 기업에 활력을 불어 넣어 주는 길 밖에 없다. 손희식 기자 hssoh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