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자총액제한제도 완화 등 정부의 대기업 정책이 갈피를 잡지 못한채 표류하고 있다. 경제 총괄부처인 재정경제부는 대폭적인 기업규제 완화를 약속하고 있으나 정작 주무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가 연일 반발성명을 내는 등 정부내 불협화음이 여과없이 외부로까지 불거져 나오는 상황이다.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은 18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열린 고려대 경제인회 주최 강연에서 "기업의 경영투명성과 지배구조가 개선될 때까지 재벌 시책의 기본틀을 흔들림없이 지켜나갈 계획"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는 바로 전날(17일) 진념 부총리겸 재정경제부장관 주재로 열린 '비상 경제장관간담회'에서 "증시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출자총액한도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밝힌 것을 또 다시 부인한 것. 지난 4일 재경부 주재로 열린 경제차관간담회에서 "출자총액제한제도 완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히자마자 공정위가 반박성명을 발표한데 이어 두번째다. 재경부는 미국 테러사태에 따른 주가 폭락등 금융불안을 막기 위해 전 부처가 모여 모든 비상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터에 공정위가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로 평가받는 출자총액제한제도마저 못 풀어주겠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실제 출자총액제한제도가 완화되지 않으면 30대 그룹 계열사들은 내년 3월말까지 9조8천억원어치의 주식을 팔아야 하는 만큼 증시에 부담을 줄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러나 공정위는 "경기 침체를 이유로 핵심적인 기업규제까지 도매금으로 완화해줄 수는 없다"는 주장을 거듭하고 있다. 현상에 쫓겨 완화해 주었다가 다시 규제를 강화하기는 힘들다는 논리다. 이런 탓에 지난달 10일 대규모기업집단 지정기준을 '자산순위'에서 '자산규모'로 전환키로 합의한 뒤 세 차례에 걸쳐 관계부처 장관들이 모여 협의했지만 아직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한 상태다. 이같은 정책 대립으로 인해 두 부처간 감정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재경부는 "공정위가 출자총액제한제도 완화에 반대하는 것은 자기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서"라고 비난하는 반면 공정위는 "책임감 없는 제3자끼리 모여 내키는대로 정책을 결정하려 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재경부는 공정위의 강경한 저항에 매우 곤혹스런 표정이다. 이미 기정사실이 된 출자총액 제한제도 완화를 공정위가 연일 반박하는 것은 스스로 '퇴로'를 막는 행위라는 것. 때문에 재벌정책으로 시작된 부처간 충돌이 '정책의 무한정 표류'로까지 확대될 것을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 재경부 관계자는 "이 위원장이 재벌정책을 고수하는 모습이 마치 '성전'을 준비하는 이슬람 투사를 연상케한다"며 "기업규제 완화가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건 두 장관사이의 껄끄러운 관계는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