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이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한국정부의 IT(정보통신) 산업과 벤처 정책에 조언을 해주고 한국 벤처기업인들을 교육해온 미국 스탠퍼드대의 윌리엄 밀러 교수가 실리콘 밸리의 벤처생태계에 대한 경험을 들려주기 위해 최근 방한했다.

한국경제신문은 이각범 국제경영정보교육원장(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과 밀러 교수의 대담을 마련했다.

[ 만난 사람 = 이각범 < 국제경영정보교육원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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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각범 원장 =한국과 같은 나라가 실리콘밸리와 같은 역동적 생태계를 만들어 내려면 어떤 요소들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 윌리엄 밀러 교수 =실리콘밸리는 자연발생적으로 탄생한 것이다.

정부의 인위적 지원이나 노력은 없었다.

역사적으로 산업혁명 이전에는 정부의 연구지원이 중요했다.

민간기업이 이를 뒷받침했다.

실리콘밸리의 교훈은 노동력을 유연하게 활용했다는 것이다.

연기금 퇴직연금 등 금융자원 뿐만 아니라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는 엔젤과 벤처펀드가 존재했다.

세법규정도 위험을 최소화하는 장치로 작용했다.

유한 책임을 지는 파트너가 벤처펀드를 운영하고 있다.

위험은 투자금액에만 한정돼 있다.

만약 투자한 회사가 망해도 벤처투자가가 자기 집을 빼앗기지는 않는다.

이런 점이 은행 대출과는 다르고 이는 위험추구를 가능하게 했던 요소다.

<> 이 원장 =한국은 코스닥주가가 급등하면서 벤처기업도 급성장했다.

금융위기 이후 평생직장 개념이 무너지고 노동시장도 유연해지고 있다.

융자 대신 투자라는 새로운 자금조달방식이 IT붐을 이루는데 근간이 됐다.

그러나 최근 경기 침체로 벤처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 밀러 교수 =미국의 경우도 비슷하다.

98-99년에 시장이 급등했다.

2000년 들어 갑자기 냉각됐다.

그러나 벤처기업 기술기업 인터넷기업중 수익모델이나 비즈니스 플랜이 제대로 된 기업은 여전히 수익을 내고 있다.

이것이 바닥인지 여부는 아직 모르겠다.

일부 학자들의 비관적인 전망도 있지만 내 생각은 다시 성장할 것 같다.

당분간 침체했다가 재상승한다고 본다.

인터넷은 세상의 모든 것을 바꾸고 있다.

금융 커뮤니케이션채널 소비자 부문등도 계속 바뀔 것이다.

대부분 인터넷기업이 광고수익모델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야후같이 큰 기업를 빼고는 광고수익으로 존속할 기업은 별로 없다.

<> 이 원장 =한국도 닷컴기업의 비즈니스모델이 광고수익에 의존해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면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 밀러 교수 =인프라스트럭쳐 역량을 키우고 비즈니스모델도 바꿔야 한다.

B2C보다는 B2B쪽으로 전환해야 한다.

일부 B2C 기업은 이미 규모가 커진 탓에 진퇴양난에 빠져 이런 전환이 쉽지 않을 것이고 일부는 망할 것이다.

<> 이 원장 =지속적인 창업이 이뤄질려면 지속적인 기술적 지원이 있어야 하는데.

<> 밀러 교수 =기술적 지원의 원천은 대학 기업간 네트워크에서 나온다.

여기서 나온 혁신적 기술과 아이디어를 자본화해야 한다.

이런 혁신은 한 곳에서만 나오는게 아니다.

<> 이 원장 =실리콘밸리에서 대학의 역할은 크다.

스탠퍼드 버클리 등은 기술적인 지원역할을 했으며 고급 인력을 공급해 왔다.

산학 협력도 주도해 왔다.

<> 밀러 교수 =스탠퍼드대의 가장 큰 역할은 양질의 기술인력을 공급하는 것이다.

교과과정에 변하는 산업을 반영하고 있다.

반도체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반도체기술은 스탠퍼드대에서 시작하지 않았다.

다른 곳에서 나온 기술이었다.

스탠퍼드 공대는 반도체를 새로운 기술의 흐름으로 보고 신속하게 교과과정에 포함시켰다.

스탠퍼드는 이 기술에 대한 인력과 아이디어를 공급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학생들을 곧 이 신흥산업에 뛰어들었고 이 분야의 벤처기업에서 일하기를 원했다.

<> 이 원장 =스탠퍼드대와 밀러 교수는 한국의 벤처기업가들을 교육시켜 왔다.

예컨대 스탠퍼드와 한국정부의 공동프로젝트인 SEIT 프로그램을 만들어 많은 벤처기업인들이 실리콘밸리의 기업경영의 본류를 배웠다.

이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 밀러 교수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한 98년 이런 이아디어가 나왔다.

암벡스그룹의 이종문 회장이 지원을 약속했다.

특히 김 대통령은 IT산업의 중요성을 인정, 이 분야를 집중 육성했다.

스탠퍼드대의 교육은 사고방식을 바꿔 준다.

패러다임 변화를 유도한다.

<> 이 원장 =이 과정에 참석한 동창생들은 매월 만나고 있다.

벤처클리닉이라는 컨설팅기능도 하고 있다.

벤처투자를 하는 SEIT펀드도 운영하려고 한다.

기업가 벤처캐피털 교수들이 커뮤니티를 만들어 활동한다.

<> 밀러 교수 =그런 활동이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스탠포드대에서 뭘 배웠느냐다.

강의실에서 참가자 개개인은 주도적 역할을 하려고 노력했다.

이들은 앞으로 한국경제에 강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려는 정신과 에너지 열정 등이 중요하다.

<> 이 원장 =이번 방한을 계기로 IT 분야에 종사하는 한국의 전문가 그룹에 주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 밀러 교수 =한국은 잠재력이 있다.

강력한 교육체계, 높은 기술수준, 사업능력 등 자원도 많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정부와 기업이 이런 재능을 어떻게 활성화 할 것이냐를 고민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사고방식의 변화를 가져와 젊은 벤처기업인이 다른 세계와 연결되고 이것이 금광을 캐도록 해 줄 것이다.

정리=안상욱 기자 sangwo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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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러 교수 누구인가 ]

윌리엄 밀러 교수는 미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명예교수로 스탠퍼드 벤처비즈니스 교육과정(SEIT)을 주도하고 있다.

한국벤처업계에도 제자들이 많다.

김대중 대통령과 한국 정부에 벤처정책에 대한 조언을 자주 해왔고 이런 공로로 지난해 우리 정부로부터 훈장를 받기도 했다.

IT산업 등 첨단산업과 벤처기업육성을 통한 지역사회 발전분야를 주로 연구해온 그는 현재 스탠퍼드대에서 기술정책, 사회주의 전환전략, 정보기술 전략, 벤처기업론 등을 강의하고 있다.

여러 벤처기업의 이사회의장 대표이사 등을 맡는 등 산학협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