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않아 모처럼 수출호기를 놓칠 위기에
빠졌다"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첫 무역투자진흥대책회의에서 박태영 산업자원부
장관은 수출애로를 이렇게 설명했다.

실제로 수출대금결제에서부터 수출용 원자재대금확보(수입신용장개설),
수출상품생산용 무역금융등 수출관련 3대 금융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풀리지않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산업자원부 재경부등 관련 부처들은 아직도 수출지원과
금융시장 정상화 사이에서 정책 컨센서스를 이루지못한 채 티격태격하고
있다.

산업자원부가 지난주 무역협회와 주요업종별 단체 10여 곳을 통해 조사한
결과, IMF체제이후 수출업계의 자금부담이 평균 3배 가까이 급증했다.

환율상승으로 인한 수출용 원자재가격급등, IMF이전 외상수입대금
상환부담, 은행의 외상수입신용장 기피등으로 3중고를 치르고있다.

무협은 "수출업체들이 외환위기전 3개월동안 외상수입한 원자재대금을
올들어 오른 환율로 상환하는 과정에서 8조5천억원의 추가부담이 생겼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수출부대비용까지 크게 올랐다.

수출용원자재로 알루미늄등을 수입하는 A사의 경우 수입대금, 외환수수료,
관세, 하역료등 수입관련 비용을 이전보다 2백40%나 더 많이 부담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자시절 시중은행장들을 직접 불러 수출환어음 매입을
독려했지만 아직 IMF이전의 80%수준에서 맴돌고있다.

현대 대우 기아등 자동차 3사가 처리하지 못하고있는 수출환어음(D/A)이
10억달러에 달한다.

환율급등으로 무역금융수요는 더 늘었는데도 은행들의 몸사리기로 인해
실제 지원규모는 더 줄었다.

작년 11월 무역금융잔액이 2조8천5백60억원이었으나 2월말 현재
2조6천9백억원 남짓이다.

무역협회는 "은행들이 외환위기이후 3개월이 지난 지금도 일람불
신용장만 제대로 처리해줄 뿐"이라고 밝혔다.

우리 수출의 3분의1 가까이 되는 기한부신용장, 추심방식등은 제대로
결제해주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로인해 수출을 하고도 자금회수가 늦어 후속 주문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수출용원자재 확보가 어려운 것도 금융애로때문이다.

시중은행들이 여전히 외상수입신용장 개설을 기피하고있다.

현대 삼성 대우등 종합상사들까지 외상수입(유전스)에 곤란을 겪고있다.

지난주 산업자원부 조사결과, 중소수출업체들의 원자재 현찰거래 비중이
작년10월까지 33%선이었으나 지금은 70%로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수출상품납품대금중 어음결제비중은 작년 58.6%에서 84.6%로
뛰었다.

은행의 수출부대비용 인상도 또다른 부담이다.

수출입은행의 플랜트 수출보증수수료가 IMF체제이후 3배로 올랐다.

무협은 시중은행의 기습적인 외환수수료 인상으로 작년 12월 한달에만
수출업계의 부담이 1조4천5백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수출업계의 이런 애로사항은 IMF체제이후 지금까지 별로 호전되지않고
있다.

정부가 확실한 정책방향을 못잡는 것이 문제다.

산업자원부와 재경부 한은등 돈줄을 쥔 쪽의 정책견해가 워낙 판이한
탓이다.

재경원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선 외환보유고확충, 금융구조조정등
금융쪽에 정책초점을 맞춰야한다고 본다.

반면 산업자원부는 금융문제에만 매달리다간 수출호기를 놓치게되고 결국
외환위기탈출이 늦어질수밖에 없다고 반박한다.

차라리 수출지원에 정책주안점을 두는 것이 우리 처지엔 현명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시각차는 첫 "무역투자진흥대책회의"를 앞두고 확연히 드러났다.

산자부는 당초 대기업 무역금융을 부활시킬 생각이었으나 재경원의
반대에 부딪혀 백지화됐다.

산자부는 또 세계은행(IBRD)외화자금중 10억달러를 시중은행의
수출환어음매입에 지원해야한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재경부의 제동에 걸려 대통령보고 직전에 구체적인 수치를
지워버리는소동을 빚기도 했다.

<이동우 기자>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3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