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명제는 결국 형해만 남고 실명되고 말았다.

실명제를 유지하기 에는 당장의 숨은 돈끌어내기가 시급했다는 얘기다.

실명제는 그동안 경제부진의 근원이라는 일방적 비난을 받은 끝에 결국
IMF체제가 들어서면서 종막을 고했다.

실명제 도입 당시만해도 공평과세 실현 등 경제정의를 실현하는 유일하고도
근본적인 방법으로 평가되던 것이 시행 4년만에 만악의 근원으로 전락하는
일종의 마녀사냥식 비난을 부른 끝에 정권담당 세력이 바뀌면서 "효력정지"
의 운명을 맞았다.

국회가 24일 확정한 실명제 관련 법안은 종합과세의 무기한 유보, 외화
금융거래에 대한 무제한의 가차명 허용 철저한 비밀보장 비실명 장기채의
대량 발행을 골자로 하고 있다.

<> 비실명 장기채권 =금융실명제 대체입법에 비실명 장기채권발행 조항을
포함시켰다.

내년 1월1일부터 3개월 동안만 한시적으로 판매되며 금리는 실세금리를
보장한다.

그러나 증여나 상속에 해당하는 고율과세를 분리과세함으로써 최대한
형평성 시비를해소할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채권 종류는 고용안정기금채권 외국환평형기금채권 중소기업 연쇄도산
방지채권 증권금융채권 등 4가지다.

분리과세 세율이나 채권발행금리 규모 채권 만기구조 등은 정부가 나중에
정하게 된다.

재경원 관계자는 표면금리는 연 20% 수준으로 하되 분리과세율을 40%선으로
해 실효세율이 12%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만기는 5년 이상 10년으로 하고 종류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발행금액은 10조원선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 금융소득 종합과세 유보 =경제위기가 완전히 해소될 때까지 종합과세를
무기한 유보해 지하경제권을 맴돌거나 퇴장된 자금이 제도금융권으로 흡수
되도록 유도하기로 했다.

국회는 40%나 되는 종합과세 최고세율을 기피하는 자금이 상당수 지하
자금화돼 있다는 판단이다.

금융소득에 대한 종합과세가 유보되는 경우 이자나 배당소득이 아무리
많더라도 15%의 원천징수세율만을 물면 된다.

물론 비실명 장기채는 따로 상향조정된 세율로 분리과세를 물어야 한다.

국회는 ''경제위기가 해소될때까지''라는 꼬리표를 붙여놓아 빠르면 1년 길면
3년 이후에는 종합과세로 복귀하겠다는 것이지만 유보기간이 장기화되거나
아예 금융소득종합과세를 포기할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

특히 정부는 이미신고를 끝낸 96년 소득분에 대해서는 종합과세를 늘리돼
97년 귀속소득에 대해서는 종합과세유보혜택을 주기로 했다.

<> 금융거래비밀보호 =그동안 개인금융거래정보를 누설한 금융기관 직원에
대해서만 처벌해 왔다.

앞으로는 금융기관 직원으로부터 정보를 넘겨받아 공표한 사람까지도
처벌한다는 방침이다.

그동안 정치권에서는 금융기관 직원으로부터 정치인과 그 친지들의 금융
거래 자료를 넘겨받아 이를 공표하곤 했다.

이같은 정치자금폭로전의 과정에서 개인들의 금융거래정보가 누설되는데도
자료를 제공한 금융기관직원을 찾아내지 못해 금융실명제의 개인정보보호
장치가 무력해졌다.

자료를 제공받아 활용하거나 공표한 사람까지도 처벌하기로 함으로써 개인
정보보호는 상당부분 효력을 얻게 됐다.

또 금융감독당국이 일정한 조건하에서 계좌 조사를 할수 있도록 하자는
방침도 국회에서의 최종 확정과정에서 완전한 비밀 보호를 위해 아예 금지
시켰다.

결국 사법당국의 영장이 없이는 금융거래는 완전히 보호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 외환 금융거래 가차명 허용 =이번 국회의 실명제 논의 과정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부분은 외환 거래에 대해서는 차명은 물론 가명거래도 허용키로
한 점이다.

그만큼 달러 거래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으로 이를 환영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외환 거래에 대해서는 또 가차명 인정 외에 출처조사를 전면적으로 면제
하기로 했다.

한편 개인송금 한도를 종전 30만원에서 1백만원으로 높였다.

< 김성택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