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초반에 스페인에는 히스파노-수이자를 제외하고는 스페인 고유의
자동차회사가 없었다.

당시 스페인의 자동차 공업은 1차 세계대전때 영국에서 들여온 대형 트럭을
뒷골목에서 수리하여 쓰거나 고작 수리용 부품만을 만드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전후의 황폐한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스페인에 직접 만드는
자동차회사가 필요했다.

특히 경제 건설에 필요한 상용트럭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에 프랑코 장군은 1946년 ENASA라는 국영자동차회사를 만들어 트럭을
생산하게 했다.

여기서 만든 트럭은 페가소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 이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하늘을 나는 말, 페가수스를 뜻하는 것이었다.

이에 앞서 1945년에는 알파로메오에서 활약하고 있던 월프레도 리카르트를
엔지니어링 총책임자로 영입하게 됐다.

그는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나 포르셰와 알파로메오를 거치면서 상용차
뿐만아니라 경주용차의 제작에 참여한 경험이 있어 페가소를 만들기에
적합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40년부터 생산이 중단된 히스파노를 흡수하면서 본격적인 생산이
시작되었다.

이로써 ENASA는 트럭과 버스를 생산하면서 회사의 기틀을 잡아나갔다.

그러나 리카르트의 꿈은 트럭을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알파로메오에 몸담고 있을때 엔초 페라리의 독선에 불만을 품고 나온
엔지니어중의 하나였다.

그는 엔초 페라리가 만든 자동차보다 뛰어난 성능의 스포츠카를 만들고
싶어했다.

여기에 프랑코는 트럭과 버스의 성공에 힘입어 스페인의 자동차 기술력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했다.

이 두가지 모티브가 1950년에 프로젝트를 스타트 시키게 했다.

처음에 리카르트는 이 차를 스페인 승용차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혁신적인 자동차로 만들고 싶어했다.

그러나 프랑코는 자동차 판매에는 관심이 없이 많은 비용을 들여서라도
기술의 진보를 뽐낼 수 있는 광고용 차를 만들기 원했다.

결국 프랑코의 뜻대로 기어방식의 그랑프리용 DOHC 엔진이 얹히게 됐다.

이로 인해 시속 2백km의 속도를 냈지만 시끄러운 소음으로 여러가지 문제점
을 안게 됐다.

그렇지만 페가소Z102의 이국적인 보닛 형상과 독특한 라디에이터 그릴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기술을 선전하는 자동차답게 53년에는 슈퍼차저를 적용하고 54년에는
트윈 슈퍼차저를, 55년에는 4.5리터의 대형엔진을 탑재하면서 다양한 모델로
개발됐다.

그러나 리카르트의 꿈대로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고 7년동안
1백여대만을 생산하고 중단됐다.

김상권 < 현대자동차 승용제품개발2연구소장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