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수통상대사의 세계무역기구(WTO) 초대사무총장 선출가능성이 점차 희박
해지고 있다.

사무총장 선출의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미국이 김후보의 라이벌인 레나토
루지에로 전이탈리아무역장관쪽으로 기우는 듯한 기류가 최근 잇달아 감지되
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통상전문지인 저널 오브 커머스지는 15일 "미키캔터미무역대표부(US
TR)대표는 미국이 루지에로를 지지키로하고 그 대가로 사무총장임기를 4년에
서 2년으로 줄일 것을 유럽연합(EU)통상위원장 리언브리튼에게 요구했다"고
보도, 이를 뒷받침했다.

아울러 EU에 자리를 양보하는 대신 차기 사무총장은 비유럽인사를 앉히기로
합의를 봤다는 외신들도 들어오고 있다.

물론 미국이 루지에로의 손을 들어주기로 했다는 공식발표는 없었다.

그러나 루지에로를 거부해 오던 이제까지의 입장에서 크게 후퇴한 것만은
사실인 것같다.

이처럼 미국이 입장을 바꾼 것은 여러 갈래로 해석이 가능하다.

우선 김후보의 당선가능성이 희박하다는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다는 게 그
하나다.

물론 미국이 김후보 지지를 표명한 적은 없어도 루지에로를 거부해 왔던 만
큼 확실한 입장표명을 미룬채 반대를 고집할 경우 EU와의 마찰이 생각보다
격화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김후보는 지난 2월 후보에 대한 비공식지지투표에서 루지에로후보의 57표에
크게 뒤진 28표를 기록했었고 그이후로도 지지국을 그다지 확보하지 못한 것
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하나는 WTO체제를 조기에 정상가동하기 위해선 사무총장선출을 언제까지
미룰 수는 없음을 중시, 조기에 선출문제를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는 분석이다.

사실상 WTO출범을 주도해 온 미국으로서는 별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조
기에 이문제를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한쪽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개점휴업"상
태에 있는 WTO를 하루빨리 제 궤도에 올려놓아야 했다는 얘기다.

물론 외무부나 주미대사관 모두 미국이 루지에로 지지로 돌아섰다는 보도에
대해 "아직 결정된 바 없다"며 부인하고 있지만 "초대 한국인 세계경제총수"
의 꿈은 "다음기회"로 넘어갈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지고 있다.

<김정욱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