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세계무역기구)협정이 국회에서 비준됨으로써 한국경제는 보호막을
완전히 걷어내고 국내외시장에서 "무한경쟁 시대"에 접어들게 됐다.

대부분 분야에서 5-10년간의 개방유예기간을 확보, 점진적 개방이란
수순을 밟을 수 있다지만 개방속의 생존지혜 모색은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됐다.

당장 내년부터 문이 열리는 부문도 적지않다.

우선 쌀시장이 그동안의 빗장을 열어제쳐 외국산 쌀을 받아들이게
된다.

내년중에는 국내소비의 1%인 5만1천t만을 수입하는 걸로 그치지만
이후 10년동안 해마다 개방률을 0.25-0.5%씩 늘리는 것으로 돼있다.

뿐만 아니다.

쇠고기의 경우도 내년중 12만3천t을 들여와야 하고 냉동돼지고기도
2만1천t을 수입하는 것으로 예정돼있다.

보리 대두 사료용옥수수등도 추가 개방대상이다.

농업분야에 개방한파가 몰아닥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 됐다는
얘기다.

정부는 이에 대비해 종합적인 농어촌대책을 마련, 98년까지 42조원을
들여 농어촌구조 개선사업을 추진하는등의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서비스시장에도 내년부터 개방파고가 몰아닥친다.

WTO 자유화대상 업종 1백55개중 우리나라가 개방키로 한 분야는
사업서비스 커뮤니케이션서비스 건설 유통 금융 운송등 78개업종에
걸쳐있다.

이중 이미 자유화돼있는 73개업종을 뺀 5개업종중 사진서비스업과
사무관련 대리서비스업이 내년부터 신규로 문호를 열게 된다.

또 외국인의 건축설계시장 참여가 내년부터 허용되며 세무사자격의
국적요건이 폐지돼 외국인 진출을 받아들이게 된다.

96년부터는 회계서비스 세무서비스 건설기계장비임대등이 추가 개방
되는 것으로 일정이 잡혀있다.

지적재산권 부문도 까다로운 보호절차가 부과된다.

현재 대량으로 불법복사돼 유통되고 있는 컴퓨터 게임소프트웨어에
대한 법적 규제가 강화되며 와인등 일부 주류는 원산국 상품이외에는
판매할 수 없게 된다.

특정기업에 대한 정부보조금 지급도 불가능하게 된다.

직접 수출지원이나 무역금융등의 운용이 제약되며 국내생산품 사용
증대를 위한 보조금 축소도 불가피해졌다.

수입선다변화제도등 WTO체제에서 분쟁의 소지가 있는 무역제도들도
철폐내지 점진적 축소 수순을 밟아야 한다.

무역제도의 "투명성"을 새로운 과제로 부여받게 됐다는 얘기다.

그러나 WTO주요 협정분야인 관세인하 부문에서는 당장 우리 경제계에
미칠 파고는 없다.

한국은 83년이후 시행해온 관세율 인하예시제에 의거, 이미 공산품
실행세율이 94년 기준 7.9%에 머물고 있어 UR에서 약속한 최종연도
(99년)의 양허관세율(10.9%)보다 낮은 상태기 때문이다.

다만 승용차 관세율은 미국과의 추가협상에 따라 내년부터 현 10%에서
8%로 인하된다.

내년부터 적용될 WTO체제가 우리에게 이같은 "수세"만을 강요하는 건
물론 아니다.

오히려 바깥시장을 겨냥한 우리의 "공세"에 날개를 얹어줄 변화가 더
많다는 게 정부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특히 미국 일본 유럽등 선진국들이 한국제품 진입을 어렵게하는 대표적
비관세장벽으로 활용해 온 반덤핑 보조금 상계관세 세이프가드등에 대한
국제규범이 강화된다는 점은 우리에게 유리한 측면으로 지적된다.

한국의 주종수출품인 철강 전자등에서는 당장 내년부터 이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점쳐진다.

또 각국이 수출자율규제등 "회색조치"를 4년이내에 철폐해야 하게
돼있어 선진국의 세이프가드 규제가 가장 큰 신발 농수산물 섬유
직물등에서 긍정적인 수출효과가 기대된다.

말하자면 "열어 줄 것은 열어주되 얻을 것은 최대한 얻어낼 수 있는"
제도적 변화가 내년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이 이런 제도변화를 "실속"으로 연결시킬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학영기자>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