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사이즈 초대형 SUV 시장 틈새 존재

1900년 디트로이트에서 맥스 형제와 모리스 그라보스키가 의기를 투합해 '그라보스키 모터 컴퍼니'를 설립했다. 이후 1902년 사명을 '래피드 모터 비히클'로 변경했고 1909년 자동차 사업가 윌리엄 듀랜트는 래피드 모터 비히클 컴퍼니를 인수했다. 그리고 곧바로 GM 산하 브랜드로 편입시킨 후 1908년 인수한 릴라이언스 모터 컴퍼니와 통합시켜 GMC를 만들었다. 쉽게 보면 GMC의 출발 자체가 상용차였던 셈이다.
[하이빔]제무시의 추억, GMC 씨에라의 한국 도입

GMC가 한국에 알려진 것은 한국 전쟁 때다. 미국 육군이 전투 참여를 위해 들여온 CCKW가 시초인 것. 그리고 CCKW는 훗날 레오(REO) M35로 개량돼 1977년까지 한국군이 사용하다 1978년 아시아자동차가 'K511'이라는 이름을 붙여 1988년까지 공급했다. K511은 '육공트럭'으로 불리며 물자 및 병력 수송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 따라서 아시아자동차 등장 이전까지 M35 트럭에는 'GMC' 로고가 붙어 있었고 국내에선 GMC를 일본식 발음 그대로 '제무시'라 불렀다. 아직도 일부가 남아 활용된다고 하니 내구성 만큼은 엄청난 셈이다.
[하이빔]제무시의 추억, GMC 씨에라의 한국 도입

출발은 상용차였지만 GMC도 세월을 거쳐 성격이 많이 변했다. 버스와 택시 사업은 일찌감치 정리한 반면 SUV와 픽업 부문은 꾸준히 사업을 키워 주목할 만한 성장을 일궈냈다. 나아가 SUV 부문에선 '디날리(DENALI)'라는 최상위 제품까지 런칭해 미국 내에서 GMC의 존재감을 입증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GM이 대한민국 트럭의 조상 격인 제무시, 즉 GMC의 부활을 알리는 제품을 수입하기로 결정했다. 바로 GMC 풀사이즈 픽업트럭 '씨에라'다.

GMC에는 3종의 픽업트럭이 있다. 쉐보레 콜로라도 고급 버전인 중형 픽업 캐년(Canyon), 풀사이즈 씨에라(Sierra), 헤비 듀티(HD,Heavy Duty) 씨에라HD다. 그 중 한국에는 풀사이즈 픽업인 씨에라1500(이하 씨에라) 시리즈가 수입된다. 포드 F150과 닷지 램1500과 같은 급이다. 뒤의 숫자 1500, 2500, 3500은 각각 1/2, 3/4, 1톤을 의미하는 적재 중량이다.

북미의 경우 씨에라 트림은 '프로(Pro)', SLE, 엘리베이션(Elevation), SLT, AT4, AT4X, 디날리(DENALI), 디날리 얼티메이트(ULTIMATE)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한국 도입이 유력한 트림은 '디날리'로 예측된다. 콜로라도 윗급이라는 명목과 쉐보레 타호가 하이컨트리 최상위 트림이어서 씨에라 또한 상위 차종이어야 경쟁력이 생길 수 있어서다. 2022년형 2WD로 3만1,200달러부터 시작하는 '프로' 트림이 있지만 국내 수입은 격이 맞지 않다. 그렇다고 디날리 얼티메이트와 AT4X를 들여오기에는 가격 부담과 트림 구성이 지나치게 마니아를 겨냥한 것이어서 수요층이 한정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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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력 도입 차종인 씨에라 디날리 시작 가격(4륜구동)은 미국 기준 6만1,795달러다. 5.3ℓ V8 엔진이 기본이고 6.2ℓ V8 엔진과 3.0ℓ 터보 디젤엔진을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캐딜락 에스컬레이드와 쉐보레 타호 또한 모두 V8 6.2ℓ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디젤엔진은 국내 배출가스 인증이 어렵다는 이유로, 마지막으로 AS의 통합성을 고려하면 V8 6.2ℓ 엔진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4륜구동과 10단 자동변속기가 장착된다.

북미처럼 다양한 트림 구성을 하면 좋지만 한국 여건 상 그것은 어렵다고 봐야 한다. 시장 규모도 그렇고 가격에 있어 대중적이지 않은 수요층 때문이다. 따라서 국내 도로 여건을 고려할 때 GMC 씨에라 디날리 숏박스(Short Box)가 유리하다. 여기에 리저브 패키지(Reserve Package)와 카고 컨비니언스 패키지(Cargo Convenience Package) 정도가 추가되면 한국지엠 최상의 SUV에 걸맞은 구성이 된다.
[하이빔]제무시의 추억, GMC 씨에라의 한국 도입

디날리 리저브 패키지에는 테크놀러지 패키지와 운전자 경고 패키지(Driver Alert PackgeII), 선루프, 멀티프로 파워스텝, 22인치 알루미늄 휠 등으로 구성돼 있다. 테크놀러지 패키지에는 HD 서라운드 비전과 리어카메라, 15인치 헤드업 디스플레이, 화물 적재공간 확인 카메라 등이 포함되고 운전자 경고 패키지에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차선유지 및 차선이탈 경고, 긴급제동브레이크, 전방 충돌 방지 경고, 인텔리빔 등이 포함돼 있다. 이 정도 품목의 디날리 차종은 북미 시작 가격이 7만480달러다. 원화로 약 8,400만원 정도 되는데 쉐보레 타호 가격을 감안하면 어떻게든 미국보다 낮게 출시될 것으로 예측된다.

씨에라는 국내 최초로 정식 수입되는 풀사이즈 미국 픽업트럭이다. 그간 병행 수입 업체에서 북미형 픽업트럭을 많이 가져왔지만 가격은 만만치 않게 비쌌다. 특히 풀사이즈 픽업은 크기에 있어 마니아 성격이 강했던 탓에 이번 한국GM의 GMC 출시를 조용히 반기는 사람이 은근 많다. 그만큼 국내에 잠재된 북미 초대형 SUV와 픽업을 원하는 소비자가 적지 않다는 의미다. 그리고 씨에라가 도로에 올라서면 한국GM은 력셔리 라인 캐딜락 에스컬레이드에 이어 풀사이즈 픽업트럭까지 제대로 된 미국식 제품 구색을 갖추게 된다. 국산차 크기 또한 점차 커져 가는 시점에 과거 덩치 자체가 부담스럽다는 미국차의 존재감이 조금씩 드러날 지 기대될 뿐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